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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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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무엇으로 사는가


BY 이쁜꽃향 2003-04-11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는 사람들의 슷자도 함께 늘어남인지
모임이 하나 둘 차츰 더 생기게 된다.
아니 어쩌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이들은 품 안에서 벗어나 버리고
점점 외로움이 더해져
서로 친구 삼아 그걸 감추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모임 가운데
남편 초등학교 동창 부부계가 있는데
시작된 지가 아마도 십오륙년쯤 되어가는가 싶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매월 어찌나 재미있게 지냈는지
모일 때마다 차마 헤어지질 못하고
각 가정을 윤회하며 날밤을 새며 놀다 보니
서로의 가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 정도까지 되었다.

봄이면 음식을 준비하여
상춘객으로 푸른 숲속을 누비고
여름이면 온가족들이 바닷가에 나가
즐거운 하루를 보내며 더위를 씻었다.
회원 모두가 결사적으로 참여하였기에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결석하는 팀조차 없었다.

그런데 처음 일곱쌍으로 시작 되었던 그 모임은
그 사이에 벌써 네 팀이나 차례차례 탈락 되었다.
세 팀은 모두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한 경우이고
다른 한 팀은 무리한 증권 투자로
가정사가 복잡하게 된 연유였다.
그 초등학교는 터가 별로 안 좋은 모양이라며
씁쓸한 마음으로 그들을 떠나 보내야 했다.

얼마동안 그들의 소식을 풍문으로만 듣게 되었는데
그 세 팀 가운데 새 가정을 이룬 한 남자가
새 부인과 함께
우리 모임에 다시 들어 오고 싶단 의사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자 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앞다퉈
모임의 부인들이 모두 반대를 했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자신의 몸은 돌보지도 않고
작은 음식점도 하다,
장판 도배 커텐집도 하며 열심히 살던
생활력 강한 전처를 무참히 배신한 그 남자가 너무 뻔뻔스러워
여자들은 더 들으려고조차 하질 않았다.

더 큰 이유는
우리 모임은 '부부계'이므로
가정의 화목에 위배되는 팀은
혹여 다른 가정이 물 들 수 있으므로 절대 안된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다른 동창들이
그 빈 자리를 메꿔 모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때로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 셋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전처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우린 그녀들의 몹쓸 남편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욕을 해대기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늘,
'있을 때 서로 잘 해야지.
그리고 여자도 헌신적으로만 살아서는 절대 안돼.
자신을 아끼고 꾸미며 살 줄도 알아야 하고...
서로 존중해 줄 줄도 알아야지'였다.
어느 한 쪽만의
일방적인 잘못만으로 된 이혼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나는 성격이 좀 고지식한지라
아무리 부부간에 힘 들어도 자녀가 딸린 가정이면
그 아이들이 성장할 동안까지만이라도
어지간하면 이혼하지 말고 참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상대가 성격이상자여서 아주 견디기 힘들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딴 여자가 생겨서 속을 뒤집어 놓는 경우가 아니라면...

법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 중인데
친한 여고동창생 부부가 건너 오는 게 보였다.
워낙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재력이 탄탄한 친구인지라
또 무슨 토지 등기 이전건으로
부부가 나란히 법원 일을 보고 오나보다 싶어
부를까 말까 망서리는데
웬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찬바람이 쌩쌩 도는 듯 하다.
사오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가는 것도 그렇고
아니, 저사람들이 서로 다퉜나...
얘, 아침부터 부부싸움 중재하러 다녀 오니...
농담으로 전화라도 하려다 말았다.

그리고 몇 주 지나 친구들 모임에서였다.
그동안 왜 전화 한통화도 없었니.
잘 살았어?
묻는 내게
그 친구가 갑자기 폭탄선언을 하는 게 아닌가.
저...너한테만 말 하는데...
나 이혼했어...

뭐??
왜?
언제?
무슨 일로???
그렇게 물으려다 도리질을 했다.
아니지,
그래, 너 참 잘했다.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결정을 대담하게 했니.
네 아이들이야 모두 다 커서
시집 장가 가게 생겼으니 뭐 걸릴 거 있겠니.
아이들도 다 이해할 것이고...

의처증에 가까울 정도로 간섭이 심한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친구는
급기야 폭력까지 쓰는 데에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당하는 것인지라.
아이들도 모두 성인이다 보니
'엄마 이해하니까 엄마 길 가세요' 하더란다.
자신의 경제력이 탄탄하니
그냥 위자료도 안 받고 이혼 했다 한다.
일년 전엔가 남편을 가정폭력으로 고발한 게 있어
요번에는 별 수 없이 남편이 이혼을 해 준 모양이다.

겉으로야
그래, 어려운 결정 했다.
정말 잘 생각 했다.
이젠 맘 편히 살아...
라고 했지만,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때때로 소외감 느끼면 어떻하나
밤에 혼자 있을텐데
외로움에 못 견뎌 우울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친구가 걱정이 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결혼할 때야 모두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백년해로 하겠다며 맹세들 하지만
어찌 그 약속이 그다지도 지키기가 어려운 걸까.
사노라면 어찌 좋은 일들만 있을손가...
사별하여 볼 수 없기 때문이라면 또 모르지
서로 보기 싫어서 갈라서는 현실이
왜 이렇게도 주변에 많이 생기는 건지.
대체 부부란 무엇으로 사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전생의 원수지간이 부부라 했던가.
새삼 내 남편과 자신을 되돌아 본다.
꼴 보기 싫을 땐
정말 이혼해버리고 싶다고
몇 번을 망서렸는데...
법원 앞에까지도 가 봤었는데...
정말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 거라고
그럴 때마다 변명을 덧붙이곤 했는데...
이혼하면 친구들 모임에서 빼 버린다고
우리끼리 웃으면서 얘길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주변에 늘어만 가는 이혼 부부.
그리고 드디어 이혼해버린 내 친구.
그들이 지금 이 위기의 권태기를 벗어나
다시 서로를 찾는 때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
한가족으로써 서로를 감싸 안으며 웃고 사는 날이
꼭 다시 와 주길 소망해 본다.

부부란 과연 무엇으로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