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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입고 오세요


BY 칵테일 2000-12-16



내가 이제 어른이 되어 가끔씩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
하다보면, 괜히 혼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때는 나이가 어렸음으로 해서 조바심을 내고,
퍽이나 심각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추억해 보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
모두가 지금 나의 옛 모습이리라.

내가 중학교를 갓 입학해서 가장 당황한 일이 있었다면,
가끔씩 하는 용의 복장 검사라는 것이었다.

그 검사란 말 그대로 학생들의 소지품, 몸의 청결 상태,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가를 보는 일이었다.

국민학교 때와는 달리 모두가 교복을 입어야 하는
까닭에, 나름대로 교칙이 있었고 그 기준대로 선생님
께서 검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검사라는 것이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망칙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국민학교 때 맘대로 옷을 입어 버릇하던 아이들이라,
새로 입기 시작한 교복의 매무새가 단정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검사를 하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검사의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교복 그 자체만 본 것이 아니라, 교복 속에
입어야 하는 속치마 따위까지 검사 항목에 들어 있어서
학생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했으니까.

게다가 주로 담임 선생님께서 그 검사를 하시는 데,
불행히도 우리 반 담임은 남자였다.
그것도 총각 선생님!

그러나 그 때는 그런 것 보다도 검사 자체에 신경이
곤두선 까닭에 --우선 우린 너무 어렸다. 여자라기
보다는 그저 작은 계집아이들이었다. 요즘 중 1
여학생들은 숙성하기도 하지만 우린 그래도 어렸다.
정말 너무도-- 검사를 한다고 종례 시간에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었다.

이 반, 저 반으로 속치마를 빌리러 가지를 않나,
심지어 브래지어까지 빌리러 다니고 그랬다.

내가 빼 먹었는 데, 검사 항목 중에는 브래지어를
착용했나 안 했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나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키가 무척 커서 반에서 큰 키로
치면 끝에서 10번째는 늘 들 정도였다.

하지만 키만 컸을 뿐이지, 전혀 여자로서(?) 성장 발육이
덜 되었었다.

그래서 가슴도 나바론의 건포도 두 알 신세였고,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검사를 하는 날 외에는 브래지어
를 착용하고 다니지 않았었다.
뭐가 있어야 가리고 다닐 것 아니겠는가.

키는 작아도 일찍부터 봉긋이 솟아오르는 가슴 덕에
국민학교 때 부터도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다니는 아이가
더러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볼 적마다 우린 키득키득대면서 그 아이들
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모여서 흉보고 그랬었다.

그러면서도 돌아서서는 각자가 막연하게나마 나는
언제나... 하는 불안감을 갖기도 했었다.

하여튼 어린 여자나 늙은 여자나 여자들 끼리 흉보는
것은 실제는 흉이 아니라 질투의 변형 일 수 있다.

어쨋든 그런 검사는 입학 초에 수시로, 불시에 있었다.

그러나 적발되면 웬지 모르게 창피한 까닭에 내
나름대로는 머리를 썼었다.

속치마야 늘 입고 다녔으니까 상관 없었지만, 문제는
브래지어였다.

하고 다녀 봤자 비쩍 마르고 가슴이 전혀 없는 나는,
브래지어가 뱅글 뱅글 돌아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평상시는 노브라(?) 로 하고 다니다가, 대신에
책가방에 손수건으로 얌전히 싸서 그것을 넣어 가지고
다녔었다.

그러다가 불시에 검사가 있다고 하면 부랴부랴 화장실로
가서 대강 얽거매고(?)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가 끝나면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 풀어서
얌전히 손수건에 싸서 가방에 쏙! 집어 넣고.
그렇게 한동안 버텼다.

정말 버텼다는 말이 맞을 만큼 나는 꽤 오래도록 그렇게
했었다.

처음에는 나처럼 하던 아이들도 어느 새 부턴가는 아예
그냥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네들의 가슴도 점점 봉긋하게
나오기 시작했으므로.

그러나 나는 1학년을 다 마치도록 몸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때부터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는 데,
그렇게 가슴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이 언젠가
부터는 초경을 맞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초경.
지금 아이를 하나 낳았으면서도 이 초경에 대해 그때
내가 가진 초조, 불안을 생각하면 속이 다 상할 정도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이런 나와는 달리, 아이들이 그 검사에서 주로
적발되는 사항은 의외로 '속치마' 가 많았다.

왜 그렇게 속치마들을 안 입고 다녔는 지, 꽤 많은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 아이가 매번 걸렸다.--
속치마를 입지 않고 그냥 교복 스커트를 입는 바람에,
그 검사 또한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 되었었다.

오죽하면 남자 담임 선생님께서 칠판에다가,

'내일 속치마 입고 오세요.'

라는 과제(?) 를 다 내 주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남자 선생님께서 얼마나 황당했었을까
싶어서 정말 웃음이 나온다.

기껏해야 삼십대 초반이거나, 이십대 후반이었을
총각이었는 데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나이의 남자들을 봐도 그저 철 없는
아이(?)로만 보이건만, 그 당시는 그래도 선생님이어서
얼마나 크게 보았던가.

물론 그 남자 선생님께서 몇 번 검사를 시도하다가
아이들이 울고 불고 --브래지어 검사할 때 나는 정말
울었다.-- 난리를 치니까, 다른 반 여자 선생님께
검사를 의뢰해서 대신 하는 걸로 합의(?) 를 봤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건 약과다.
신체 검사 중에 체중을 잴 땐, 그야말로 다 벗고 팬티
바람으로 체중계에 올라 간 기억도 있다.
물론 국민학교 때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앞에서 먼저 잰 아이가 아롱아롱한 꽃 무늬의
팬티를 입었던 것조차 아직까지 기억이 다 나는 데,
정말 그 때 우린 너무도 야만적으로(?) 교육 받았던
것만 같아서 정말 씁쓸하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여자는 여자인데 말이다.

아,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니 웬지 쑥스럽다.
요즘도 가끔씩 언더 웨어를 사러 란제리 코너에 가면,
그 생각이 설핏 떠올라 혼자 웃음짓는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이 다 커버린 어른 여자가 되었건만,
글쎄.... 그때와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제는 누구보다 확실히 속옷은 잘 챙겨 입는다는 것?
아니면 가끔은 섹시한 속옷으로 내 남자의 시선을
유혹할 줄 안다는 것?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철 모르던 어린 가슴으로, 검사를 초조히 기다리던
나의 계집아이 시절로!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