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이 어떨 것 같은지 의견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5

잠보 아줌아


BY 쟈스민 2001-08-17

어느새 가을인가 했더니
더위도 며칠동안 휴가를 갔었는지.....

마구 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이 찌는 저녁이었다.

선선한 바람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지
후끈한 공기로 긴 밤이 될 것만 같은 예감으로.....

난 일찌감치 시원한 밤을 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올해에는 유난히 마른 장마가 길어
덥게 느껴진 한 해였던 것 같은데.....

마지막 가는 걸음마저 길게 늘어져 있다.

늦더위 탓인지 새벽녘 잠을 설치고 있는 내 옆의 그는
이른 새벽에 신문을 찾아들고 다른방으로 건너가는데....

난 또 내게 다가올 하루를 명쾌한 머리로 살아내야지
하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잠을 재촉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건만
잠 앞에서는 왜 그리 맥을 못추는 걸까?

그는 나를 잠보 아줌마라고 놀려댄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잠이 많은 것 같다.

뇌의 휴식이 없이는 하루를 살아내기에 유난히 버거워 하는 난
다른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을 잠을 원하곤 하니까....

내가 잠자는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잠시나마의 시간이 좋아서이고....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재충전의 소중함 때문이겠지.....

나는 때때로 나의 이런 무딘점이 좋아질때가 있다.

칼날같은 예민함으로 사물을 바라다보는 삶이 필요할 때가 있고
모든 긴장의 끈을 풀어 놓고 세상사를 나몰라라 할 수 있는
헐거운 시간들이 분명 우리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드는 탓에

난 잠보란 소리에 별 반응을 보이질 않는다.

나의 이런 무덤덤한 반응에 옆사람까지도 별 재미가 없을 테지만....

여고시절 나의 옆 짝꿍 생각이 난다.

그 아이는 쉬는 시간 종만 치면 어김 없이 책상위에 엎드려
짧은 잠을 자곤 했다.

그 때의 나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답답하고, 둔한 아이쯤으로 치부했었는데....

그 아인 지금도 잠이 그리 많을 까?

어디엔가 있을 나 같은 사람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그건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인 걸까?

어린 시절 기억속에는 시간만 나면 주무시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엄마를 닮아서 잠이 많은 걸까?

난 어느새 엄마를 닮은 모습으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는 걸까?

직장에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건 분명
아침에 시간 맞춰 일어나 제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거다.

일을 하고 있는 시간 보다 더 어려운 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니

아마 지금쯤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아줌마라면
오전 시간을 잠으로 축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상상이 든다.

그래서 결혼하고 1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시댁에만 가면 아침에 늦게 깰까봐 긴장이 되는 건지
깊은 잠을 이룰수가 없다.

잠이야말로 정신적 상태와 많이 연관이 있는 듯 하다.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자는 잠은 언제나 선잠이 되고마니까....

시어머님은 이런 잠 많은 며느리가 늘 달갑지 않으실테지만
난 왜 그리도 잠에 대한 미련을 떨구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참 다행인건
늦잠때문에 이날까지 한번도 학교나 직장에 지각을 한 적이 없는 걸
보면 나름대로 긴장의 끈을 조절하는 능력쯤은 있는 것도 같은데....

일단 출근하면 절대 졸음이 온다거나, 잡념이 잘 생기지 않는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오래 버틸 수 있는 거.....

그런 모든게 오래된 습관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단 하루도
하루의 시작이 여유롭지 못하면
마구 자신에게 짜증섞인 화살을 쏘아대곤 하는 난

어제 밤의 늘어진 잠 때문에
오늘 좀더 여유로운 아침을 시작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더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 하루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난 이미 잘 자둔 잠 덕분에
넉넉한 에너지를 저장해 두었기에.....

잠보 아줌마면 어때....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생기있는 하루로 살아내기 위하여라면
기꺼이 난 잠보 아줌마란 별명을 달고
그리 살아갈테지....

나의 하루는
단 잠으로 하여
나만이 가지는 빛을 내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