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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엄마


BY 이쁜꽃향 2003-03-24

'고모.
제가요, 학교 끝나고 교문에서 병아리를 한마리 사 왔는데요...'
걱정스런 말투로 조카가 전화를 했다.
뭐? 병아리를??
에고고... 이를 어쪄...

봄만 되면 한 번씩 치루게 되는 연중행사.
예전에 봄만 되면 아들녀석들이 꼭 병아리를 사 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거의가 오래 살지 못한다 하였다.
건강한 병아리들은 양계장에 남고
별로 실하지 못한 녀석들만 그렇게 판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제 갓 태어난 듯한 샛노란 병아리.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예쁘고 귀엽기만 한데
아이들 눈에야 오죽 하랴.
그래서 우리 아들녀석들도 해마다 병아리를 사 오곤 했다.
그런데 늘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만다.

지금은 군인이 된 큰 넘도 어렸을 적에
애지중지하던 병아리가 죽어버리자
밥도 먹지 않고
그 병아리를 끌어 안고 어찌나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지
앞으로는 절대 병아리를 사 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었다.

그리고 십 년 터울 둘째넘이 그 형의 바턴을 이어 받아
봄이면 또 연중 행사를 한다.
작년에도 병아리를 한 마리 사 왔는데
제법 몇 주간 잘 자라 꽁지 날개까지 쑥 나온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넘이
책가방을 휙 집어 던지고 병아리집인 상자를 향해
'방~울~아~~!!'하며 돌진했다.
당연히 그 곳에 있어야 할 병아리가 보이질 않았다.
아들넘은 깜짝 놀라 병아리를 찾아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한참 후에야 병아리를 찾게 되었는데
아뿔싸!!
그 녀석은 베란다 세숫대야 물 속 에 빠져 죽어 있었다.
아마도 상자 속에서 날아 올라 밖에 나오게 된 병아리가
거실을 돌아다니다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중
친정어머니께서 빨래를 너시느라 베란다 문을 여는 사이
나가서 물을 마시려다 그만 빠지고 말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땜에 내 병아리가 죽어 버렸어.
나 몰라~~
살려 내! 살려 내!!'
유난히도 정이 많은 녀석은
옛날 제 형이 그랬듯이 죽은 병아리를 끌어 안고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해 댔다.
문을 열어 놓으셨던 엄마는 그 녀석을 달래시느라
몇 날 몇 일을 얼마나 혼쭐이 나셨는지 모른다.
'에~휴, 이 녀석아,
이 할미가 알고 그랬니.
병아리가 베란다로 나갈 줄은 몰랐지...
너 내가 죽어도 그렇게 슬피 울래??'

그런데 이젠 또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녀석이 그 뒤를 이은 것이다.
병아리??
이를 어쩐다??
제 보기에 하도 예뻐 사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서 걱정이 된 모양이다.
'고모,
병아리 파시는 아줌마가요,
병아리에게 쌀 열 개만 주라 했어요.
그런데 고모, 병아리를 어디다 키워야 해요?'

고모가 갈 때까지 급한대로 우선 라면 상자에 넣어 두라 했다.
퇴근길이 부산해 졌다.
마음은 벌써 병아리 옆에 가 있는데...
마침 집에는 기장과 조가 많이 있다.
친정엄마 미음 쑤어드리려고 사 두었던.
이젠 엄마 대신 병아리가 그걸 먹게 되는구나...

'언니!
병아리도 한 마리만 키우면 일찍 죽는대.
그러니까 한 마리를 더 사.'
여동생의 말을 듣고
그러잖아도 혼자 너무 외롭고 안쓰러워 보이던 터라
한 마리를 더 사 오게 했다.
샛노란 예쁜 병아리.
마치 갓 피어 난 개나리 같은 병아리.
예쁜 솜털같은 그 깃털들이 어찌나 보드라운지
만지면 부셔져버릴 것 같은 자그마한 고녀석을
조심스레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날개랍시고 퍼득대는 양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예 엎드려 병아리만 들여다보게 된다.
종이 상자에 신문지를 몇 장 깔고
물을 담은 접시도 하나 넣어 두고 병아리집 완성.
삐약삐약삐약삐약...
쉴 새 없이 노래 부르는 녀석들의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마치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갓난아이가
'엄마 엄마 ' 연습하는 것만 같다.

밤에 들어 온 둘째넘이 삐약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엄마!! 병아리 샀어???'
신발도 채 덜 벗은 채로 뛰쳐 들어 왔다.
상자 밖으로 병아리를 꺼내 놓자마자
두녀석이 일제히 쪼르르르...
작은 다리와 궁둥이를 어기적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엄마!
얘들은 엄마가 자기네 엄마인 줄 아는 가 봐,'
정말?
두녀석은 내가 가는대로 쫓아 달려온다.
주방으로 가면 주방으로
거실로 오면 거실로...
두 녀석이 서로 앞다퉈 뒤뚱거리며 달려 오느라
부딪혀 넘어지기도 하고...
발길에 채일까 봐 걸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캄캄해야 잘 잘 거 같아
지붕처럼 신문지로 위를 덮어 주고
잠시 후에 살짝 안을 들여다 봤다.
세상에~.
두녀석이 서로 머리를 기대어 포갠 채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네...
병아리 코 고는 소릴까...
아~휴!! 예뻐라.
졸지에 병아리네 엄마 되었다!!!
잘 키워 봐야지~~
제발 올 봄 지나도록 살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