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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감정


BY 임진희 2000-10-07

소영은 버스에서 내려 집쪽을 향해 터벅 터벅 걸었다.직장에 들

어간지 이제 7 개월째지만 오늘은 일이 밀려서 늦은데다가 직장

동료인 미숙언니가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해서 낙지 전골집에 가서

먹고 오는 길이였다.미숙언니는 지하철을 타고 간다며 반대쪽으

로 작은 몸집을 높은 하이힐에 의지해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미숙언니는

언제나 키 이야기만 나오면 침묵을 지키다가 누구든 일부러 물어

보며는 응, 나는 등소평과 같은키야,상대방은 어이가 없어서 언

제나 재차 묻는다. 그럴때마다 크게 인심이나 쓰듯이 152센치라

며 마치 특별히 당신에게만 가르쳐 준다는 듯이 뽐내고 있었다

뭐라구요,물었던 사람이나 대답한 사람이나 똑같이 웃음을 터트

렸다.그런데 체중은 비밀이였다.미숙언니의 체중에 해당되는 유

명한 인사를 아직 ?지 못한것 같았다.입사 한뒤로 마음을 터놓

은 상대는 미숙언니 뿐이였다.입사동기도 남자직원들도 왠일인지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소영이는 연애도 별반 해보지 못하고 엄

마가 시키는데로 공부를 했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딸이 되어갔

다.엄마는 엠티도 가지 못하게 했었다.괜스레 밤에 모여서 술이

나 먹고 아무튼 별로 좋지 않다며 한사코 반대를 했는데 크는동

안 엄마를 따르며 착실하게 살아왔다.그런 소영이를 보고 어른

들은 조신 하게 컸다고 모두들 칭찬 했지만 아버지만은 항상 엄

마를 나무라셨다.젊을때의 낭만은 한번 지나면 다시 느낄수 없는

데 너무 구속을 한다는 이유에서 였다.그렇지만 당사자인 소영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되었고 특별히 불편 하

다고 느낀적도 없었다.고등학교 다닐때 독서실에서 공부 하다 돌

아 오면 언제나 차를 독서실 옆에다 세워 놓고 졸고 계신 엄마

였었다.아주 가끔은 아버지와 함께 오실때도 있지만 그런날은 비

가 많이 내리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과잉

보호를 좋지 않게 생각 하고 계신 분이셨다.그런데 오늘 퇴근길

에 나는 우리집 들어오는 사거리에서 중국 호떡 기름기가 없어

다이어트에 최고 ,완전 중국식. 이렇게 쓰인 임시 간판을 단 호

떡 파는 사람을 보았다.선전문구가 마음에 들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주니 호떡 파는 남자가 잠시 얼굴을 들어 소영을

바라보았다.계면쩍어서 배도 고프지 않은데 호떡 하나 주세요.

하며 천원을 내밀었다.가격은 이미 오백원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

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작은 종이를 집어 호떡을 싸서 소영에

게 들려주며 가볍게 목례를 했는데 웃음을 약간 띈 얼굴 표정이

왠지 마음을 움직였다.젊은 남자였다.말없이 건네주는 호떡을 받

아들고 횡단 보도를 건너 집에 들어 왔다.엄마는 소영이를 보고

다큰 처녀가 무슨 호떡을 손에 들고 다니냐고 한마디 하시고 과

일을 꺼내 주시고 보고 있던 티비에 눈을 돌리셨다.이미 늦겠다

고 전화를 해 놓았기 때문에 별말씀이 없었다.옷을 갈아 입고 화

장을 지우고 샤워를 한뒤 식탁위에 올려놓은 호떡 생각이 나서

다시 나왔다.그리고 한입 베어 천천히 입안에서 맛을 음미했다.

옛날에 기름을 넣고 구운것 보다는 느끼하지 않고 고소 했지만

틀별한 맛은 느끼지 못했다.이것이 중국의 전통 호떡맛인지 중국

현지에서 먹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수 없었다.그렇지만 왠지

호떡을 건네주던 말 없는 남자의 우수어린 운동자가 가슴에 와

박힌것 같았다.회사에서 그렇게 많이본 남자들과는 어쩐지 분위

기가 달랐다.이런 느낌을 티비보는 엄마에게 말 했다가는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불을 보듯 뻔 했다.그날은 그렇게 잠이들고 다

음날 출근하기 위해 그곳을 지나자니 호떡 파는 수레도 아침에는

쉬는지 흔적도 없었다.그러고 보니 새로 생긴 장사였다.그동안

지나칠때 마다 본적이 없었다.아마 그날 처음 나온 남자였다

틀에 박힌 업무를 끝내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미숙언니는 동창

을 만난다며 서둘러서 나가고 소영은 느릿느릿 걸어서 버스를 탔

다.가로수의 잎들도 가을속으로 물들어 가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

도 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해도 점점 짧아지고 퇴근하는 버스속

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없이 바

라 보았다.제각기 쉴곳을 향해 저렇게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둥지를 ?아서 걸음을 옮기고 있는것

같았다.알수없는 쓸쓸함이 소영이의 가슴에 소용돌이 쳤다.여태

까지 이런 마음을 가져보지 않았던 소영이였다.항상 따뜻이 감싸

주고 평화로운 가정에서 곱게만 자란 소영이였다.친구들과도 마

찰없이 지냈고 무엇 하나 부족 할것 없는 소영이였다.그런데 왜

이럴까.버스는 그녀가 내려야할곳에 멈췄다.백을 메고 횡단보도

를 걸으며 건너편을 보았다.아침에는 없었던 호떡 파는 남자가

있었다.그냥 지나갈수 없을것 같아 두개를 샀다.두개 주세요

남자는 말없이 두개를 싸 주었다 .그리고 목례를 하는데 살짝

묻어나는 미소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왜 이렇게 느끼는걸까 알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이였다.그렇게 보름을 퇴근길에 호떡을 샀다

엄마는 왜 갑자기 호떡을 사오느냐고 물었지만 다이어트빵이에요

기름기가 없어서 엄마가 드셔도 좋아요.얘, 나는 호떡을 좋아 하

지 않는다.소영이는 저녁을 조금먹고 호떡을 한개씩 먹었다 키가

큰 그녀는 몸매가 너무 날씬해서 음식은 신경쓰지 않고 먹는 편

이다.보름동안이나 호떡을 샀는데 그 남자는 왜 말이 없을까 .까

짖 호떡 천원어치 사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기대 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궁금 했다.저렇게 과묵한 남자의 목소리는 어떤 소리로

다가올까 그것이 궁금 했다.슬픈 미소가 소영이의 마음에 조금씩

자리잡고 있을때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퇴근길에 호떡을 사려

고 그 앞에 섰을때 어느 젊은 여자가 수화를 하고 있었는데 말없

는 남자는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고개를 끄

덕이고 있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여태 목례만 하고 나에게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구나 .그 순간 실망 했다기보다 남자의 살짝

묻어나는 미소의 의미가 아프게 전해와서 돈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려 왔다.보름동안 가슴속에 소롯이 간직 해온 이 감정을 내색

도 하지 못한체 호떡을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핑 눈물이

고여왔다.다음날 점심시간에 미숙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 놓

았다.언니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얘, 너무 멎진 러부스토리가

될뻔 했구나 .옛날에 우리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인데 숙대앞에서

빵을 팔던 노점상 아저씨의 유명한 이야기의 후속편이 될뻔 했다

며 결국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말을 들려주며 호기심에 눈

을 반짝였다.그러면서 다정한목소리로.너는 아직 연애도 해

보지 않아서 그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일수 있지만 그런 감정은 잠

시 스쳐가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것이 좋은거라며 어깨를 두드

려 주었다.나는 더 이상 그앞을 지나갈 용기가 없어 돌아서 지나

갔다.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두번 건너야 하는대도 그 길을

택한것은 그 남자에게 자꾸 향해지는 내 알수 없는 마음 때문이

였다.우리 엄마는 호떡을 사지않는 나를 보더니 소영아 이제는

호떡이 질렸나 보구나 하시며 하품을 하셨다.엄마가 만일 이런

내 마음을 아셨다면 그것은 딸에게 정성을 들인 만큼 배신으로

다가와 어떤 행동을 하실지 상상이 갔다.그러나 왠지 가을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퇴근길이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