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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전 동의 없이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여 분노한 남편 사건을 보며 이 부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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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7

아들과 딸 들


BY 이쁜꽃향 2003-03-20

친정어머니 사십구제를 지냈다.
남편과 오빠들에겐 절에다 이미 그 의식을 부탁했음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에 불교 신자가 아무도 없기도 하지만
생전에 엄마가 우리를 위해 치성을 드리러 다니시던 그 절에
그 누구도 마음에 없는 형식적인 의식을
치루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보다도 어머니께 그동안 지은 죄를
홀로 속죄하고픈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라해야 맞겠다.

지난 7주간 수요일 오전은
내 스케쥴에서 항상 엄마 명복을 비는 날로 정해 두었다.
법도는 잘 모르지만
'엄마!!부디 극락왕생하세요.
이 나쁜 딸 꼭 용서해 주세요.
다음 세상에선 정말 아프시지 말고 상품상생하세요'
라고 기도하다 보면 마지막엔 꼭 통곡이 되고 말았다.
보고 싶은 우리 엄마...
너무도 가여우신 우리 엄마...

지난 주엔 날도 풀리어 주변이 온통 봄빛이라선지
그동안 안 뵈시던 노할머니 몇분이서 불공을 드리러 오셨다.
그 뒷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 엄마 같으신지
예불 내내 눈물이 마르지가 않는다.
'아니~. 이 언니가 언제 가셨대냐?'
'어쩐지 한 동안 안 보이시더라니...'
'쯧쯧... 다리 아프다면서도
방생 꼭 다니시고 불공도 지성으로 드리시더니만...'
'근데, 누가 이 언니 가족인겨?'
할머니들은 전에 엄마와 친하신 분들이신가 보았다.
엄마 영정사진 앞에 모여 놀란 음성으로 수군거리시더니
이내 법당 안을 둘러 보시며
엄마와 연결 된 가족을 찾는 모양이시다.

'아이고, 보면 몰러?
저기 우는 이가 딸인가 보제...'
'딸이니까 울지,
딸이니까 절에다 사십구제까지 하지...'
울며 서 있는 내게 다가오시어
눈물 그렁거리시며 어찌 가셨느냐고 물으시고
사십구제엔 자신들도 꼭 참석하시겠다며
못내 안타까워 하신다.

예전엔 절이 참 낯설고
분위기가 웬지 무서워서 싫어했었는데,
몇 번 다녀 보니 절이란 곳이
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무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
지나가던 이 누구일 지라도
신도든 아니든간에 아무나 반겨 주는 곳.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상을 차리고
상대의 아픔을 위로해 주며 함께 아파해 주는 사람들...
'보살님 땜에 나도 실컨 울어 버렸네...'
'사십구제까지만 울고 이젠 고만 우세요...'
'어머니는 좋은 데로 가셨을 거여요.
얼마나 다정하시고 좋으신 분이셨는데...'
'계셨으면 또 내 엉덩이 토닥거리시며,
에~고, 젊은 보살이 정말 잘도 하네 ...하셨을텐데...'

엄마에 대해 듣게 되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은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그리움만 더 하게 한다.
'엄마! 부처님이 엄마가 오시는 거 다 아신다고 합디까?'
'에~고. 엄마, 불경은 혼자서만 들으세요~
난 불교 신자 아니여. 난 하나님 믿는다구요~'라며
방생 가신다거나 초파일에 절에 가시는 어머니께
늘 말 장난을 했었는데...
불편하신 다리로 절을 천배씩이나 하시고,
백팔 계단을 오르시더란 얘기며,
'보살님 이름을 들어 보니,
어머님이 불공 드리시던 그 따님이시군요,
큰 외손주와 보살님을 위해 가장 불공을 많이 드리시는 거같던데...' 라는 생전 처음 듣는 엄마의 이야기들...

부모란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렇게 자식들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존재란 말인가...

사십구제를 지내는 동안 내내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오빠들이나 남동생도 눈물을 훔치는 걸로 보아
엄마께 죄송스런 마음들은 가지고 있는 건지...
하기야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신도들도
모두 눈물을 훔치는 데
인간이라면 자식으로서야 당연지사겠지.
오늘따라 스님의 독경 또한 어찌나 열성이신지
우리 어머닐 위해 기도해주시는 이들이 참 많다 생각되어
그래도 가시는 마지막 길은 외로우시지 않으리라
스스로 위로를 하였다.

'돈 없으면 불공도 못 드려.
절차마다 모두 돈이야.
정말 형식대로 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든다구.'
라던 친구의 말처럼 심심찮게 돈은 들었지만,
'내 엄마께 이 정도도 못 해드려'싶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엄마 마지막 가시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무엇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것을...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 중에 십년만 뚝 떼어
엄마 생명에 일 년만으로라도 치환해 줄 수 있었으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생에서 이십년 쯤 감해도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다 여겼었는데...

이젠 생전에 부모님께 잘 해드리지도 못한 사람들이
제사상은 더 요란스럽게 차리는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그들이 생전에 불효한 만큼
그 상차림도 복잡해지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걸로라도 그 전의 불효를 씻고 싶어서...

우리 부모님은 아들과 딸 들이 많다.
그런데에도 평생을 자식들 덕이라곤 입으신 적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이십여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평생 며느리 밥을 몇 달이나 드셨을까...
큰 오빠는 아버지 살아 생전에 효도와는 담 쌓은 위인이고
이제 꼭 자신의 전철을 밟는 외아들을 보며 살고 있으니,
세상사 모두 '심은 대로 거두리라'란 말과 무관하지 않고
작은 오빠는 죽도록 돈 만 버는 '일벌레'로
올케 손에 경제권을 맡겨 버리고 사는 꽁생원,
사십구제 때에도 그 며느리는
자신의 친정엄마 병 간호 하느라 참석하지 않았다.
막내 아들은 평생 부모님 속만 썩인 불효자의 대표급.

그 못난 아들들 사이에서 난 어려서부터 철이 일찍 들었다.
오빠들 믿고 있다간 우리 부모님의 노후가 어찌되실지
어린 마음에도 상당히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시골에 살면서도 오빠들을 도시의 학교로 유학시키셨던
우리 부모님의 교육열은 참 대단하셨다.
아들 딸 차별 않으시고,
아니 더 명백히 따지자면 오히려 딸을 더 애지중지 하셨다.
시집 가서 남의 집 식구 되면 고생한다시며
궂은 일은 절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선지 난 철이 들면서부터
부모님은 내가 모셔야겠단 결심을 키워갔다.
오빠들은 성인이 된 한참 후까지도
부모님의 노후나 생계에 전혀 보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도 없었던 거 같다.
평생 아들들로 부터 '효'라는 단어를 사용해 볼 기회조차도
가져보시지 못하신 우리 부모님.

이제 두 분 다 저세상으로 가시고 보니
아들들 써 먹을 일이 딱 하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장례 치를 때 부모님 묘 쓰는 일.
딸은 부모님을 잃은 슬픔에 겨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냉정한 아들들은 그 마지막 절차 하나는 해 낸다는 거...

결국 엄마도 며느리 밥은 못 드시고 가셨다.평생을...
자신들이 부모님께 해 드린 게 없는 탓에
묵묵히 여동생이 하는대로 따라 준 오빠들에게
그나마 고맙다고 해야 할까.
세 시간여에 걸친 의식에 별 불만의 표시없이 따라 준
아들들은 마음 속으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마저 가시고 나니
내 핏줄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진다.
매일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내게 형제라도 있음을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엄마의 빈자리를 이젠 혈육들로라도 채워야 그나마 버틸 것만 같다.

이런 때 내게 정말 딸이라도 있었으면...
엄마의 이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가졌을 지도 모르는데...
딸도 혼자는 외로우니, 둘, 아니 셋이면 더 좋고...

아들도 딸도
내 핏줄로 곁에 있을 수 있단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픈 이 아침,
엄마의 극락왕생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