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아내가 사전 동의 없이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여 분노한 남편 사건을 보며 이 부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4

반장 2


BY immin 2003-03-19

지난 번에 반장이라는 글을 쓰고 한 주일이 지난 것 같다. 우리 아이가 반장이 되어 감격스러워서 자랑하고픈 마음에 그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반장이라는 단어에 나쁜 기억을 갖고 있기에 시작한 글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우리 나라가 가난하였기 때문에 빈부의 차이가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외모나 옷차림을 보면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 눈에 부잣집 아이들은 별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선택받은 공주와 왕자로 보였다. 선생님들도 그들을 특별하게 대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부잣집 아이들을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 보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그들을 특별 대우한다는 오해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부잣집 아이들을 선망하면서 그들을 질투하는 예민한 아이였다. 돌이켜보면 마을 사람들 대부분 가난했건만 나는 우리 학교 소수의 부유한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가난을 지나치게 의식했는지 모른다.
지금 아이들도 혹 그럴지 모르지만 반장은 당연히 부모가 유식하고 부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런 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반장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를 잘 해도 될 수 없는 게 반장이었다.
나의 눈은 집요하게 선생님과 부잣집 아이들의 관계를 추적했고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뒷거래가 있을 거라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나의 이런 생각은 전혀 근거없는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를 썩 잘 했는데도 우등상을 받지 못 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밀렸던 것이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은 수를 받았는데 음악, 미술, 체육은 미였다. 나는 노래를 잘 불렀고 그림도 잘 그렸다. 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 없는 판결이었다. 게다가 부모가 학교를 안 찾아가니 우등상 받기는 틀렸다는 동네 어른들의 얘기에서 나는 일찌감치 내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보았던 것이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졌기에 아이의 학교에 한번도 찾아 가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게다가 같은 반 아이의 엄마들과 아이를 놓고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도 한몫을 했고 초등학교는 즐겁게 다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특별나게 취급받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제법 교육적인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학교를 보낼 때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하는 말은 하지 않았고 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 와라.고 당부했다.
공부는 집에서 시키면 된다고 생각해서 실력을 키우는데는 신경을 썼다. 우리 나라 교육이 지나치게 주입식에다 문제 풀이식 공부라서 자칫 아이를 소모적인 점수 싸움에 휘말리게 하지 않을까 경계하면서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는데 역점을 두었다. 초등학교 때는 못 해도 경쟁이 불가피하게 될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예상은 적중을 해서 중학교에 올라가자 마자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하였다. 기말 고사에서도 쉽게 점수를 따냈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보다 어휘력이 뛰어나니까 교과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말 성적표를 받아보니 등수가 한참 밀려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들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펄쩍 뛰었다.
그 놈의 수행평가가 잘못 된 것이었다. 몇 과목 수행 평가에서 점수를 못 받고 보니까 반에서 4등으로 등수가 밀렸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학급에서 4-5등 했던 아이가 1등이 되어 버렸다. 아이 말에 따르면 선생님들은 자기들 앞에서 살랑거리는 아이들에게 점수를 잘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등이 된 아이는 엄마가 전 선생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까지 했다. 나름대로 곰곰 그 원인을 분석해 보니까 수행평가가 정착이 안 된 데다가 초임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 아이가 전학을 한 바람에 특수반 아이의 다음 번호로 들어가 특수반으로 오해한 선생님이 점수를 낮게 주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이가 드러누워 우는 통에 나의 눈에서는 불이 났고 나는 이성을 잃고 흥분을 했다. 과거 내가 당했던 기억과 내 아이가 처한 이 잘못된 현실 앞에서 나는 괴로웠다. 몇 밤을 지새우며 고민 끝에 난 변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