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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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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교 이야기


BY 무소유 2003-03-14

2003년 3월 14일 금요일 구례군 토지면 연곡 분교

***사탕보다 진한 사랑***

지현이가 가고 난 빈 자리를 성숙한 모습으로 메꾸어 가는 모습이 아름

다운 우리 반 여섯 명의 작은 천사들(5학년 둘, 6학년 넷) 때문에, 나는

새로 태어나 사는 기분이 드는 요즈음이다. 해마다 3월이면 졸업시킨 아

이들의 그림자를 빨리 지우지 못한 채 새 아이들 속에서 바쁨과 적응 사

이에서 마음마저 꽃샘 추위에 떨곤 했는데.....

오늘이 '화이트 데이'라는 걸 모르고 출근한 멋없는 나를 이른 아침부

터 기다리고 있는 초콜릿과 사탕통! 지난 밤 회사일로 늦게 퇴근한 남편

이 미처 챙기지 못했고, 이 나이에 그걸 빠뜨렸다고 서운해 할 나이도 지

난 지금. 초콜릿 한 개도 받지 못한 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우리 반 귀

여운 아이들이 채워준 것이다. 간식이 귀한 시골 학교라서 어쩌다 내가

가져온 사탕 한 개, 껌 한 개를 입에 넣어주면서도,

" 정우야, 나 좋아하니?" "형진아, 선생님 이뻐?" "경민아, 선생님 사랑

해?"

라고 짖궂게 물으며 다가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랑스런 내

아이들. 이 아이들은 이제 막 꽃대를 올리며 세상을 향해 사랑의 나팔을

불고 있는 저 매화들처럼, 그들 스스로 이미 꽃이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

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도 찬 바람 부는 들판에서 오는 봄을 알려

주는 매화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주는

자연의 섭리를 닮았다.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함을!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

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어른의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을 따르며,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

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

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어린애의 사랑과 성숙한 사랑을 다 보여주는 꽃의 사랑

이다.

경제적 잇속 때문에 만들어진 화이트 데이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표

현의 미학에 서툴러 아직도 곰삭지 못하고 경직된 나의 삶을 되돌아 보

게 하는 날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아, 너희들이 보여준 사탕의 향기처럼, 초콜릿의 달콤함처럼 이

작은 학교에서 사랑으로 가르치고 배우며 사탕보다 진한 사랑의 학교를

만들어 보자.'

(이 글을 올리는 저는 아줌마 선생이랍니다. 분교에서 5,6학년 6명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생활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