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부터 봄비가 내린다.
이 비 개고 나면 화창한 봄날들이 찾아오겠지.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조카녀석 초등학교 입학식.
함께 가 줄 올케가 없으니 내가 대신 가기로 맘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망나니 동생넘이 제 아들 입학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린 손주녀석 못 미더워 우리 엄만 어찌 눈 감으셨을까.
아무래도 딸 속 태울까 봐 안쓰러워
어머니의 영혼이 동생넘을 보내신 것만 같다.
손주녀석 입학식하는 걸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직 내 마음 속 엄마의 빈자리를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남편도, 아들넘도, 그 무엇으로도...
어제 저녁엔 또 엄마 사진을 붙들고 울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뜸을 들이고 수화길 드니 남편이었다.
'뭐 해?'
'그냥~...'
'또 엄마 생각하고 울었어?'
남편 앞에선 한 번도 티를 안 냈는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눈물이 솟구쳐 아무 대답도 않고 흐느꼈다.
'뭐 먹고 싶어?'
'아무것도...'
남편은 날더러 이젠 받아들이라 한다.
참으로 냉정한 사람이다.
오늘이 엄마 가신 지 꼭 한 달.
가슴 속 한 켠이 훵 비어 버려 황량하기 그지 없다.
대구 참사 유가족들은 얼마나 애통할까...
아무 준비도 없이 보내 버린 자신의 혈육들...
생전에 지은 죄가 많아 아무에게도 내심정을 말 할 수가 없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차마 사망신고를 할 수가 없어 계속 미루고 있는데,
신고 하면 아주 영영 엄마를 보내는 것만 같은데...
냉동실 문을 열면 문득 가슴이 콱 막힌다.
구석구석마다 남아있는 엄마의 손길들.
일 년 먹을 마늘 빻아 비닐팩에 넣어 두시고,
바쁜 딸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하려고
손질하시어 넣어 두신 봉지들.
수입깨 먹지 말라고 직접 재배한 농가에서 사다
볶아 놓으신 참깨,참기름...
난 아마 몇 년간은 냉장고 문을 열 적마다 맘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워낙 살림에 젬병인 딸년 못 먹고 살까 봐
수입 소금 구별 못한다고,
쓰고 맛없는 소금 먹을까 봐 국산 소금도 두가마니나 사 놓으셨다.
아직은 그 무엇도 친정 엄마의 빈자릴 채워주지 못 한다.
친구들은 군발이 말년 병장 장남이 어서 와야
네 마음이 조금은 덜 허전할 거라고들 한다.
친정엄마 가신 후 6개월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던
여고동창의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조카녀석 쫓아다니다 보면,
바쁘게 살다보면 그 빈자리가 메워질까...
그러다 우리 엄마 내 기억속에서 잊혀지면 어떻할까...
아직은 엄마 생각만 떠 올려도 눈물이 핑 도는데,
'엄마'란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조카녀석 입학식에나 다녀와야겠다...
어미 없는 가여운 녀석에게
고모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
친정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