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책들 버리려 내놓은 거야."
이웃의 언니가 호들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묻는다.
"응,왜?"
"아니, 볼만한 책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언니를 따라나가, 책이 쌓여 있는 대문 앞으로 갔다.
빨간 끈으로 묶은 서너무더기의 책, 그것은 방송대 교재가 대부분이고, 오래된 잡지가 몇권...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있는 언니는 뭔가 공부냄새가 나는 책을 보고,
욕심이 났나보다.
"언니, 그거 애들 볼 만한거 아냐. 물론 볼 수는 있겠지만, 갖다 둔다 해도 보지 않아. 언니 집에 좋은 책 많던데, 그거 읽으라 그래."
책이란 펴 보지 않으면, 그 안에 어떤 보물이 든 지 알수 없는 것인데도,그저 이것저것 가르치고 싶은 생각에 엄마들은 그저 책에 욕심을 낸다.
방송대 교재도 전문서적이 아니라, 교양과정 책이고,그 과정학생이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책이다.
필요한 책이라면 두었겠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내다 놓은 것이다.
책을 이것저것 들춰보며, 얘기하고 있는데,들썩거리며 걸어 오던
수협직원이 똑 같은 걸 묻는다.
"그거 우리 마을 문고에 기증하면 되겠는데."
"마을 문고 이용자 중에 이거 볼 사람 없어. 그리고 마을 문고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지 말고 적절한 책, 좋은 책 골라다 비치해야지.
무조건 권수 많다고 좋은가?"
내가 이상한가?
책이란 읽힐때 가치가 있지, 꽂이 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버리지 않으면, 누군가 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나는 찾아 나설수도 없고, 묶인 상태로 창고에 두느니
폐지로 재활용 되는게 더 나은게 아닐까?
책을 내다 버린다고, 내용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걸 주운다고, 내용을 줍는 것도 아니다.
책은 종이로 된 유형의 상품이지만, 알맹이는 무형이다.
책을 가지고 있으면, 그 내용까지 가진듯하고, 책을 버리면 그 내용까지 버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책은 나도 욕심을 내는 편이지만,꼭 갖고 싶은 책일수록 내가 받은 감동을 나누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줘버린다.
그러나, 갖고 있을 가치도, 주변에 권해 줄만하지도 않을땐, 미련없이 버릴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책을 남들보다 더 많이 사는데도, 우리 집 책장에 책이 없는가?
어린이 책도 그렇다.
좋은 책 다 낱권으로 사서, 우리만 보기 너무 아까워서 딸아이 학급문고에 다 보냈다.
사람들이 그런다.
" 동생들 있는데, 뒀다가 보여주지."
몇년동안 묵혀두기도 아깝고, 필요하면 도서관 가서 빌려 봐도 된다. 이미 좋은 책임을 확인한 이상 어디서도 구해 볼 수 있다.
음식도 옷도 좋은 것일 필요는 없지만,책만은 좋은 책이어야 한다.
그러나,아무리 좋은 책도 한장씩 넘겨서 읽어 주어야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옆에 두고 자꾸 봐야하는 책을 빼고는 방생을 한다.
세상으로 날아가 살라고.
"그런데, 이거 누가 다 읽은거예요?"수협 직원이 다시 묻는다.
"내가."
"이 많은 책을 보고도 왜 담배가게 해요?"하며 웃는다.
나도 웃음이 터졌다.
책 많이 읽은 사람은 뭔가 학문적인 일을 해야하고, 담배가게나 하는 사람은 책도 한줄 읽지 않는다?
농담이었지만, 그게 사회통념일 것이다.
책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로 통하는 통로라는 생각.
남편과 딸 앞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딸아이 하는 말
"이게 우리 집인데, 그럼 무슨 일을 하라고?"
"맞아."
무얼 모르고 있는지, 무얼 채워야 하는지 알기때문에,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책이 필요함을 느낀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그 길은 지금 담배가게를 지나고 있다.
담배가게 칠년, 지금에서야 그 길엔 수평선 에 나타난 작은 배처럼 하나의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그 책을 '다 읽고도 담배가게 아줌마밖에 안되는' 이유이다.
나는 매일 끝없이 이어진 그 길을 걷는다.
아득히 보일듯말듯한 영혼의 편안함과 자유, 혹은 무엇이라 이름하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