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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들의 예의


BY ooyyssa 2003-01-30

보일러를 하루 종일 켜 둔것도 모자라, 전기 난로까지 켜야 할 만큼 추운 날이다.
이 추운 날에 물에 빠진다면 얼마나 추울까?

가파도에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져 숨진채 이틀만에 발견됐다.
예전에 식수로 쓰던 우물을 봉쇄해 놓지 않은데다가, 도로가 높아져서 우물의 턱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버린 모양이다.
자식들은 다 섬에서 나와 살고, 할머니 혼자 계셨던데다가, 폭풍주의보로 배가 다니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발견할 때까지,자식들은 발만 굴렀다.

일흔 두살이라던가?
노인네라, 쉽게 헤엄쳐 나오지도 못하고, 몸은 점점 얼어들어가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설을 앞두고, 자식들은 몹쓸짓을 한것마냥 죄스러울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날, 치과에서 새로 이도 박았다는데, 그 이로 맛있는 것 한번 드시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살아가는 일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수 있는 일이 더 많지만, 죽는 일은 선택하기가 어렵다.
삶의 뒤에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온다할지라도, 그걸 알아낼 수가 없는 우리는,10년을 계획하고, 2,30년 뒤의 여유로운 노년을 계획한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죽음의 형태도 또한 다양하다.
어떤 형태로, 언제 죽게 될지 알수 없지만, 눈을 감는 순간, 영원히 다시 못 볼것들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
내 가슴에만 아니라, 남의 가슴에도 한맺힘 없이, 살아가리라.

남의 죽음 앞에서, 내 삶을 돌아 보는 일이 오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날동안은 열심히 살아가는게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고, 산자로서의 도리라 생각한다.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눈 감는 순간,못 해본 일, 안한 일, 못 먹어 본 것, 못가본 곳으로 가득하지 않도록, 열심히 보고, 맛있는 것 먹고, 해보고 싶은 일하고,보고싶은 사람 만나면서 살아가야, 여한이 없을 것같다.
또한, 죽을 때 여한이 없어야, 남아있는 사람들도 가슴이 덜 아프다.


내 삶에 글을 쓰는 일에는 이제 한이 남지 않겠다.
쓰고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싶은 것들 여기서 쓸 수 있으니.
또 내가 무얼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