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팥죽 끓듯 부글 거리는 오후다.
전화 벨이 울린다.
"선생님, 시원한 맥주한잔 어떻세요? 선생님 뵙고싶어 댁근처에 왔어요"
오랜만인데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집으로 오라는 내말에 오랫만에 밖어서 만나고 싶단다.
내가 Y를 처음 봤을때 그는 고교생이였다.
대학을 나와 대단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평범한 직장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젊은 남자다.
지난해 봄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내게 인사하려 왔을때 조금 상기된 모습이였고 별일이 없다면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살아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몇번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는데 올초부터 소식이 뜸했다.
잡다한 주변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그는 비실비실 싱겁게 자꾸 웃는다. 나는 진득히 그가 하려는 말을 기다리며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오늘은 친구만나 마시면 취할것 같아 왔어요. J가 결혼한데요."
잠깐 침묵이 흐른다.
"2월달 눈이 많이 내리던 날있었잖아요. 그날 좀 다퉜는데....
그때, 자존심이 좀 상했거든요. 차가 없다고 투정을 J가 많이 했어요. 살까도 생각했지만 출퇴근 하는데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갑부도 아닌데 무리해서 사기도 그렇고 해서...."
다시 침묵이 흐른다.
그는 빈맥주잔을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서로 안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형편도 비슷하고, 다투긴 했어도 서로 삽십이다되고...
끝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금 시간을 갖자고 했는데....
선생님은 인생을 함께한다는게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결혼하신지 30년 가까이 되시죠?"
내가 보기에도 둘은 그만그만하게 어울리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다시 비식웃더니
"마음이 이상해요. 딱히 이거다 하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뭔지 모르지만.... "
피터지게 싸우면서 헤여지는 아이들은 나도 많이 경험했지만, 이런
경우는 뭐라 설명하기가 멋적다.
나도 그를 따라 싱겁게 히죽이미 한마디 어줌잖게 뇌까린다.
"설명이 필요한건 아니지?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이런 것도 새로운 젊은 이들 문화중 일부가 되려나?"
우리는 적당히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헤여졌다.
나도 마음이 이상하다. 사랑이란 말 , 동반자라는 의미 속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지?
집으로 돌아와도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가 띵하다.
그리곤 instant란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자주 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