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세계적 작가의 짧은 장편소설.
광고회사의 커리어우먼 샹탈은 이혼 후 4살 연하의 장 마르크와 동거중. 샹탈은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초조해하는데 마르크는 어느날 익명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존재불안의 시대에 사랑을 통한 해법을 제시한 수작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 1순위에 오르는 밀란 쿤데라(69)의 아홉번째 소설이 국내에 출간됐다. 현대 서구 문학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로 국내 팬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책이 민음사에서 정체성이란 제목으로51개 짤막한 장으로 구성돼 선보였다.
육체의 노화와 삶의 권태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은 "그래도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은 사랑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르몽드가 이 작품을 놓고 "쿤데라 문학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평했을 만큼 새로운 형식적 시도가 돋보이는 이 책은 삶의 매력을 잃어가는 한 여인이 남자 주인공에게서 전해오는 편지를 통해 신선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신비스럽게 그리고 있다.
마치 두 목소리가 숨막히게 얽혀있는 이중창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 전개 과정이 섬세한 문체 속에서 순간 순간 빛을 발한다. 쿤데라는 체코 출신 작가로 프랑스에서 활동해왔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쿤데라가 쓴 중년 남녀의 사랑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새 소설「정체성」(이재룡 역 민음사)을 내놨다. 첫 소설「농담」부터「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느림」까지 철학적 글 쓰기로 일관했던 그가 이번에는 중년 남녀의 사랑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은 51개의 짧은 필름을 이어놓은 것처럼 구성돼 있다. 주인공은 아들을 잃고 이혼한 뒤 광고회사에 다니는 샹탈과 그의 애인 장 마르크. 두 사람의 시점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복잡한 내면세계가 갈피마다 펼쳐진다. 소설은 노르망디 해변가의 한 호텔에서 시작된다.『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무기력해 하는 샹탈. 그녀에게 어느날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다.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그녀는 낯 모르는 남자의 편지를 읽으며 예닐곱 살 무렵 가슴에 품고 지내던 장미 향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어떤 날은 편지 내용이 대담해진다.「3일 동안 당신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다시 보았을 때,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늘씬한 몸매로 경쾌하고 디오니소스적이고 도취한 듯한 야만적 불 꽃 에 둘 러 싸 여 있었습니다. 불꽃처럼 빨간 당 신 * * *」 며 칠 후 그녀는 빨간 잠옷을 산다.
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장밋빛 침대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한다. 그런 다음날 아침은 더없이 청량하다. 그러나 편지를 보낸 사람이「자기 남자」인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일종의 배신감에 사로잡힌다. 그녀는「런던으로의 일탈」을 감행하고 장 마르크는 그녀를 찾아 런던 행 기차를 탄다.
결국 이곳에서 둘은 서로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샹탈은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남자, 장 마르크의 관심 속에 자신이 포근하게 감싸 안겨 있다는 걸 절감한다. 49장까지 장 마르크와 그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던 소설이 50∼51장에 오면 작가의 시점으로 돌변한다.
작가는 라스트신에서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이렇게 읊는다. 「나는 조그만 머리맡 스텐드 불빛을 받고있는 그들 두 사람의 옆 모습을 보고 있다. 베개 위에 목덜미를 기댄 장 마르크를 내려다보며 그녀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예요. 하염없이 당신만 바라보겠어요』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꾼다. 언제나 그대로 있는 것이 없고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한 식상함을 너무나 빨리 발견한다.
어쩌면 일탈은 이 땅에 진정 내가 왔다가는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지 않을까?
쿤데라...중년의 사랑 그것은 모든 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오직 하나의 소망이지만 그것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행복 오직 한번만의 행복은 늘 일탈을 꿈꾸는 곳에서 부터 시작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