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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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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의 위기


BY 잡초 2003-01-21

" 지족동 언니 나좀 잠깐 봐요 "
물컵 설겆이를 하느라 싱크대에 고개를 박고있는 나를 사모는 부른다.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꽃히고
난 서둘러 고무장갑을 벗고 쓱쓱 앞치마에 손을 문지른다.
" 별일없을거야 "
동료들은 내게 등을 두드려주고 난 서둘러 사모의 뒤를 쫓는다.

" 앉아보세요 "
손님들을 받는 방으로 불려간 나는 우선 앉으라는 사모의 쌀쌀맞은 말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모와 마주 앉는다.

" 요즘 무슨일 있어요? 많이 바빠요? "
" 네... 죄송하게 됐읍니다. "
" 이런식이라면... 함께 일 못하죠 "
" 그렇게 됐네요 "
" 벌써 몇번째예요? 아직 한달도 안되어서 말입니다 "
" 압니다. 하지만 요번일은 불가피하게 그리 된겁니다.
죽고 사는게 마음대로 되는것도 아니고 초상이 예약된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

발끈 화가나는 나는 저자세에서 고자세로 고추앉으며 사모의 눈길을 마주 받는다.
불그레한 사모의 낯빛에서 그니도 화가 많이 나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어쩔수 없는 일이었고
최선을 다해 내 도리를 하고 자리를 비운것인데
은근히 해고의 압력을 받음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일하는 식당은 한달에 세번을 공식적으로 쉰다.
직원들끼리 서로 돌아가며 편리한 시간에 쉬게끔 되어있었는데
출근한지 십이일만에 서울 큰 오빠의 환갑이 있어 하루 쉬었고
쉬고 출근한 바로 이튿날 상조계모임에 초상이 나는바람에 하루반나절을 쉬게 되었다.

상조계모임은 십여년쯤 되었는데 양쪽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박삼일간을
꼬박이 일을 해 주는 모임이다.
시 할머님이 돌아가셨을때도 난 그네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고.
육개월만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때도 그네들은 아무불평없이 마치 제 일인양
그렇게 꼬박 삼일장을 치루도록 일을 해준것이다.

그렇게 난 그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 벌어먹자고 빠질수가 없어
?대한 내가 일을 할수있는 시간까지 일을 하고는 늦은시간에 상가에 가서
장지까지도 못가보고 돌아왔는데
우스운것은...
다시 출근하기가 무섭게 다른사람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내가 쉴수있는 시간은 반나절 밖에 없는데...
그리고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다른동료들이 힘이드는데..
나로인해 다른 쉴 사람이 지금 못 쉬고 있는데...
미치고 폴짝 뛴다는 표현이 이런데서 어울리는걸까?
12일에는 환갑집.
13일에 친구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6일에 출근하여 일을 하다보니 다시 초상났다는 전화.

주저앉고 싶었다.
어찌 말을 해야하나?
절대로 불참할수는 없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일을 빠질수도 없고.
동동거리고 있을때 동료하나가 내게로 오더니 방법을 제시해 준다.
" 언니 차라리 언니가 사람을 사서 놓고가 "
" 응? 어떻게? "
" 언니 대신 내일과 모레 일 할사람을 데려다 놓고가면 되잔아 "
"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근데 사람은 어디있으며 돈은 얼마니? "
" 사람은 내가 구해주고 돈은 이틀에 팔만원이야 "

휴~ 살았구나 싶다.
겨우얻은 직장. 이제 조금씩 적응해 가는데 다시 해고는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니의 도움으로 난 사람을 살수있었고
하루 사만원씩 이틀 팔만원의 돈을 그니의 손에 쥐어주고는
부담없는 마음으로 상가집의 일을 마무리 지어줄수가 있었던 것이다.

장지까지 다녀오니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도저히 일을 나갈수가 없어
홀장에게 전화를 했다.
" 미안해. 오후에 나갈께 "
" 응 걱정하지말고 쉬었다가 이따 오후에는 나와 "

반나절의 정당한 내 쉬는 시간이 남아있어 여섯시간을 쉬었다가 출근을 한것인데
사모의 눈꼬리가 심상치는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애써 사모의 눈길을 피해 옷을 갈아입자마자
동동거리며 홀 이곳저곳을 뜀박질 한것인데...

은근한 해고의 압력에 오기와 독기가 서려진다.
오무렸던 어깨를 당당히 펴고 난 사모와 맞서기로 했다.

" 전 정당합니다. 내 쉬는시간 활용했고 그렇지 못할때엔 내 대신 일할사람을 대치시켰읍니다 "
" 어떻게 한달도 안되서... "
" 초상집을 간것입니다. 꼭 가야되는. 그리고 죽음은 예약돼 있는게 아닙니다 "
" 열심히 한다고 했지 않았읍니까? "
" 예. 물론 그랬지요. 제가 일에있어 모자란것이 있었읍니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읍니다 "
" 일은 열심히 하신다는거 압니다 "

이야기 도중 하나둘 문밖으로 동료들이 모여들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네들끼리도 웅성거린다.
잠시 사모와 내 대화는 끊어지고 누군가의 입에서인가
" 순디기언니 그만두면 나도 그만둘꺼야 "
속삭이듯, 그러나 들릴수 있게 또렷한 말이 들려온다.

순간 사모의 표정에 흔들림이 보였고 동료들의 웅성거림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네들의 움직임에 사모의 마음이 변한걸까?
갑자기 표정과 말투가 부드러워 지며 얼굴에 미소까지 진다.

" 될수있으면 이번처럼 그렇게 연짱 쉬는일 없었으면 해요 "
" 노력은 하겠읍니다 "
" 한달 세번쉬니까 충분히 초상집에는 갔다올수 있지 않겠어요? "
( 매달 초상만 나라는 법이 있읍니까? )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 말을 애써 삼키며 나 역시도 사모처럼 부드러운 말소리로
" 예 알겠읍니다. 아무튼 피해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

마무리를 짖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모는 방을 나가고 동료들은 소리안나는 박수들을 쳐 댄다.
이야호!의 소리없는 환호와 함께.

서둘러 나머지의 시간을 식판을 들고 홀을 누비며
난 한쪽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잠시 닥아왔던 해고의 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