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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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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순이 사라지다


BY 임진희 2000-10-02

내가 뻥순이를 본것은 육년전 쯤이다.뻥순이는 어릴적에 친엄마

가 집을 나가 언니와 함께 새 엄마 보살핌을 받으며 컸다.친척들

의 수근거림은 언제나 뻥순이 엄마가 바람이 나서 골샌님 남편을

버렸다며 불쌍한듯이 뻥순이 자매를 보고 있었다.새엄마는 나이

많은 처녀 였는데 뻥순이 아버지와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 콩쥐 팟쥐에서 나오는 엄마가 아니고 친엄마가

자식을 감싸주듯이 언제나 뻥순이 자매를 먼저 신경 써 주는 따

뜻한 분이셨다.그 점은 뻥순이도 인정을 해서 자신은 생모 보다

새 엄마가 더 좋다고 늘 말하고 있었다.뻥순이가 사회 생활을 할

때 부터 뻥순이 생모는 연락을 해서 밖에서 새 엄마 몰래 만나

기도 했었다.생모는 아버지를 버리고 재혼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은듯 뻥순이에게 속없이 돈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엄마를 닮아 이국적인 뻥순이는 졸업후 의상

실에서 잠시 근무 하다가 지금은 유명한 기업이된 어느 식품 회

사에서 사장실 비서로 근무 하기도 했다.그때 까지는 그저 재미

있기만 하던 뻥순이가 결혼 후 부터는 달라지기 시작 했다.연애

를 떠들썩 하게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결혼은 중매로 했다고 했

다.나는 그때 지방에서 살 때라 연락이 되지 않아 참석 하지 못

했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두아이를 낳고 바쁘게 살던 어느날

전화가 걸려 왔는데 뻥순이였다. 은자니? 오랫만이다 네소식은

숙희 한테 들었다. 내일 우리집에 놀러와 ,숙희도 온댔어. 나는

막내의 손을 잡고 그녀가 알려 준대로 생전 처음 가는 동네로 들

어 섰다.버스 정류장 앞에서 케?揚?사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저

쪽에서 아기를 업은 아줌마가 손을 흔들었다.다가 가면서 속으

로 놀랐다.미니 스커트에 화사한 화장을 하고 언제나 과장된 표

정으로 웃겨주던 뻥순이는 놀랍게도 촌스런 아줌마로 변해 있었

다.앞장선 그녀를 따라 경사진 길을 조금 올라가니 아담한 단층

집이 있었다.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전면에 돌을 붙

여 놓아서 얼핏 보기엔 견고 하게 보였는데 눈여겨 보니 집장사

가 지은 집임을 알수 있었다.뻥순이 집에서 바라본 반대 쪽은 산

등성이까지 빼꼭이 차있는 판자집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아

마도 이곳은 새롭게 개발을 하고 있는 동네 같았다.남편은 사업

을 한다면서 숙희와 나에게 커피를 권하며 사가지고 간 케?揚?

잘라서 예쁜 접시에 담아 왔다.일상적인 안부가 끝나자 그녀는

얘기를 풀어 놓았다.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 한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딴판이였다. 얘, 우리는 제주도에 땅을 사 놓았고 김포에도

땅을 사 놓았는데 지금은 논이지만 앞으로 개발이 되면 한밑천

할것같아, 너네들은 땅 사둔것 없니? 재산은 분배를 해 두어야지

한곳에 묶어두면 안된다, 부동산 증권 현금을 적절히 나누어 놓

아야 한다며 쉬지 않고 교과서 같은 얘기를 늘어 놓았다.점심을

먹으면서도 그녀의 재태크 이야기는 이어졌다.친구가 궁금 한것

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말이 하고 싶었던것 같았다.쏟아지는 그녀

의 마침표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어린 시절의 천진했던 그

녀가 사라진것 같아 안타까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그녀의 내면

어디에서 부터 그렇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자동차 처럼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리게 할까 ,속으로 생각하며 긴 이야기를

처음에는 맞장구를 치며 듣다가 나중에는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숙희는 이미 이골이 난듯 몇번이나 귀가 아플만큼 들었다는듯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입으로 연신 음식을 넣고 있었다.수십년

만에 만난 친구를 마주 하고 왜 그리 자신을 포장 하고 싶어 했

는지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만나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조금은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모임에 나올때 마다 기발한

소리를 해서 친구들을 질리게 하고 있었다.아파트를 세채 분양

받았는데 친정 아버지 명의를 빌려서 했다는둥 이사를 자주 다

니면서도 한군데 붙박이로 살지 못했다.그렇게 많은 투자를 했

다면서도 한번도 안정된 눈빛을 본적이 없다. 그렇게 몇년동안

모임에 나오더니 어느날 부터 소식을 끊고 말았다.총무가 전화

를 할때 마다 처음에는 회갑이다,칠순이다,제사다 ,하며 참석 할

수 없는 핑계를 대기도 했는데 그나마 두절되고 말았다.사정이

있을거라며 연락 하지 말자고 의견이 모아졌었다.자신이 좋다며

들어온 모임인데 나름의 곡절이 있을것 같았다.그후 뻥순이가 모

두의 뇌리에서 사라졌을 무렵 직장에 다니는 친구가 우연히 출근

길에 만났다고 했다.그러나 뻥순이를 알아본 친구는 미안 해서

먼저 다른칸으로 몸을 숨겼다고 했다.아침부터 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차마 말을 걸수가 없었다고 한다.한쪽손에 커다

란 가방을 쥐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공장에 나가는지 그런

모습이였다고 했다.미모도 세월따라 변하고 나이든 아줌마가 딱

이 취직 할때도 마땅치 않은 세상인데 뻥순이의 또 다른 생활력

에 어떤 슬픔같은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뻥순이 딸이 고교 삼

학년때, 뻥순이는 딸자랑에 시간을 보냈다.우리딸 성적으로는 틀

림없이 일류대를 갈수 있다며 대학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는데 속

으로는 참 철이 없구나 하면서도 희망에 부풀어 있는 뻥순이에게

입시는 치러 봐야 안다는 말을 차마 해 줄수는 없었다.끈질기게

일류 타령을 하던 뻥순이는 딸 아이가 힘겹게 재수를 해서 강남

의 어느 대학에 들어 간뒤로 잠시 잠잠 해진 적도 있었다. 그러

나 기운 차린 얼마후 부터 장학금을 받아가며 공부 한다고 목소

리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어릴때 부터 새 엄마 밑에서 말썽

없이 자랐다고 해도 그녀의 내면 어딘가에는 늘 열등감이 도사리

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남편의 사업이 기울때 마다 오히려 큰

소리를 쳤던 그녀가 이제와 생각 해 보니 코 빠치고 주눅들어 있

는것 보다.마음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좌절 하지 않고 살아

보려는 뻥순이 나름의 몸부림이 아니였나 기슴이 아프게 느껴져

온다.어느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 얘, 코스닥에 투자 해서 한 밑

천 했다.너는 투자 한것 없니? 높은 목소리를 들려 줬으면 한다.

뻥순아 화이팅 .네말대로 열심히 투자해서 건강하게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