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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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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과 편지 한 장


BY 들꽃편지 2001-07-24

흐린창가에 앉아 친구의 편지를 읽었다.
창은 열려있고,
아침부터 내린 비는 그친 상태의 비의 여분이 더위를 잠재우고 있다.
난 항상 늦은 아침을 기다리고 늦은 아침을 맞는다.
큰 아이는 미술학원으로 작은 아이는 영어학원으로 나가고
그래서 언제나 아침은 비어 있기 일쑤지만...
아침은 우울하다.
난 그렇게 혼자만의 아침을 홀가분하게 받아들이기 보다
우울하게 받아 들이는 성격을 지녔다.
그런 나를 버리고 싶고 버리고 말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오늘도 또 우울하고 허전한 아침이였다.

아침나절부터 비는 버릇처럼 내렸다.
아이들도 아침에 나갈때면 우산부터 챙기는 것이 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름비라는 것이 한꺼번에 내리는 이유가 뭘까?
봄 가뭄에 나누어 내리면 얼마나 신통할까마는...
창이 넓은 거실에 앉아 버릇이 되어버린 하늘을 난 본다.
그러하여 하늘이 푸르고 흐림을 보고 느끼고 두눈속에 넣어
다시 가슴으로 담아둔다.
우울...그런거가 항상 하늘에 그려져 있다.
그리움...이런거가 항상 하늘가에 흘러간다.
별로 다른것도 없는 하늘의 얼굴과 자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내 사람처럼 하늘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표정을 볼 수가 있다.

한 낮쯤에 미술학원에 갔던 큰아이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편지봉투보다 큰 하얀봉투를 내 앞에 뚝 떨어뜨렸다.
내 이름 석자가 쓰여있는 봉투.
어디서 왔을까 보험회사에서 왔나했었다.
그러나 그건 아니였다.
친구였다.
고향친구.
어릴적 양은 도시락만한 책과 책사이에 끼어 있는 편지 한 장.
간단한 내용이였지만 내 생각을 하며 보낸책과 편지는 우울한 내 가슴에
적당한 기쁨을 주고 있음을 알았다.
자잘한 꽃이 찍혀 있는 편지지.
그리고 이쁘다는 말과 함께...

씩씩하고 당당하게 웃긴말을 잘 하던 친구의 모습이 편지속에 보였다.
주홍색 겉옷과 주홍색 립스틱이 선명했던 고향친구.

하늘을 다시 한번 보았다.
비구름은 벌써 사라져 분명 비는 내리지 않을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외출을 준비했다.
한복집에 잠시 나갔다와야 했는데...
아침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게으름이 온 집안에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은책 한 권이 늘어진 나의 아침을 깨워주었고,
손수 쓴 편지 한 장이 우울한 나의 하늘을 열어주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오늘이지만
오후의 기분은 훨씬 달라져 일터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비 온 뒤의 거리는 퐁퐁으로 닦은 화장실처럼 반짝반짝 빛이났다.
가로등 기둥마다 자주색과 분홍색의 페츄니아꽃이 두 분씩 매달려 있었다.
바람결에 찰랑찰랑 흔들리는 모습에서 더움은 잊고 버스안과 같은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그래 흔히 하는 말이지만 행복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것에서 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냉커피 한 잔에서도
들에 자라고 있는 풀잎에서도
밤 잠을 설치며 보는 책 한권에서도
뜻밖에 날아 온 편지 한 통에서도
행복이 폴폴폴 향기를 내는 것이다.
아! 행복한 향기 내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