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십이월 사일날은 시 아버님 제사가 있어 고향에 다녀왔다.
작은 아들은 시험중이라서 모처럼 약속이 없다는 큰 아들을 앞세우고
내려갔다.
네시간쯤 달려서 시댁에 도착했다. 넓은 마당가엔 먼저온 형제들의
자동차가 세워져 있고 우리도 그뒤에 차를 세우니 차소리를 듣고
방안에 있던 형제들이 일제히 어서 오라고 반겼다.
남편은 구남매인데 아들 다섯 딸넷인 형제중 네째아들이고 서열은
일곱번 째다.
이미 해가 기울고 형님들과 손위 시누 손아래 시누이 아버님 형제분
들이 일찍 오셔서 제사 준비는 다 마치신것 같았다.
항상 서울에 사는 형제가 제일 늦게 도착해도 우리 큰 형님은 별 말씀
이 없으시다.
남편이 오전에는 사무실 일을 보고 오후에 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사실 큰일은 잘 해보지 않아서 언제나 심부름 수준이고 설겆이
담당이기도 하다.
시 고모님 둘째 작은 어머님 막내 작은 어머님은 방안에 앉으셔서
정담을 나누시면 되시고 우리집 마음씨 좋은 시누님들은 잘 도와 주셔
서 별반 마찰을 일으킨 적이 없다.
막내딸인 내가 시집을 와서 여러가지로 서투르게 일을 했어도 언제나
농담으로 넘겨 주셨지 미운소리를 드러 내놓고 하신적은 없었다.
저녁 늦게 막내작은 아버님 아들인 사촌 시동생이 들어오고 약속이
있어서 늦게 왔다는 막내 시누이 남편이 마지막으로 넓은 거실에 육친
들이 가득 하다.
그래도 지금은 조카들이 빠져서 그렇지 예전에는 집집마다 아이들과
함께 왔을때는 아버님 형제들과 그 자녀들이 함께 하면 그야말로
대 식구 였다.
시 어머님 살아계실때는 시 할머님 제사후엔 동네분들을 모셔서
항상 대접을 하셨는데 그때 우리 큰형님이 형님이 제사를 모시게 되면
이렇게 음식을 많이 장만 하지 않고 간소 하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형님은 그 옛날 어머님이 하신대로 많이 준비 하시고 또 다음날
동네 분들을 초대 하신다고 한다.
정년 퇴직한 아주버님은 고혈압으로 후유증이 약간 생기셨고 둘째,
세째 아주버님도 퇴직 하셨고 이젠 젊음은 이미 퇴색 하셨어도 형제
들이 모여서 마주 앉아 서로의 늙어가는 모습을 애틋한 눈길로 주고
받는 모습에 혈육의 정 이라는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둘러 앉아 쉬임없이 웃고 먹다 보니 다들 배 불러서 큰일 이라고
말하면서도 젓가락은 모두들 놓지를 않고 분위기는 너무나 즐겁다
저녁 먹고 나서 열시쯤 되어 제기에 음식을 차리고 드디어 제사는
끝났다.
다시 술한잔씩 따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또 먹고 제사날은 형제
들의 친목을 나누는 날과 같다.
살아 서도 부모님덕 돌아가셔도 부모님덕에 이렇게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으니 옛날 어른들이 모두가 부모님 덕 이라고 하신 말씀을
알것 같았다.
우리 큰 형님은 막내 동서와 막내 시누이에게 음식 나누기를 부탁
하시고 두 사람은 비닐봉지에 똑 같이 나누어 넣었다.
가까이 사시는 분들은 다들 차를 타고 돌아 가시고 서울사는 사람들은
주무시고 가시는데 우리는 큰 아들이 오늘 일이 있다고 해서 밤새
아들과 남편이 교대로 운전해서 아침에 집에 들어 왔다.
남편이 운전 하면 마음이 편한데 생각 한다고 아들녀석이 더 오래
운전을 했지만 웬지 마음이 불안 하고 또 신경이 쓰였다.
자주 만나지 못 해도 형제는 늘 그자리에서 언제나 똑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