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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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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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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웨딩 마치를......


BY 물안개 2001-07-22

오랬만에 고향에 가는데 즐거움 보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양장점 차린지 얼마되지 않아서 결혼도 하기전에

임신을 했으니 .....

집에 도착 했드니 부모님은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계셨는데

시아버님께서 이미 편지로 알리고 결혼 날짜를 잡을수

있도록 허락 해달라고 하셔서 친정 아버님은 사위감을 본후에

결정 하겠 노라 서로 서신을 주고 받은 터라 나는 정말 죽을

죄를 쬐끔 면했죠.

저녁때 아버님은 사위감을 불러서

" 자네 이름이 정호 라면서? "녜"

"음~~음 ~~문 앞에 와 있는 호랑이라~~~ 자네 참을 인 자를

많이 써야되겠네"

아버지는 뭔가 앞일을 내다 보듯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고 사위감으로 생각 하셨습니다.

나는 신랑감을 데리고 동네 이고 저곳 겟 바탕으로 동백

숲으로 섬 뒤쪽으로 두루 두루 구경을 다녔죠.

작은 아버지는 조카 사위감 준다고 작은섬 목 넘에가서

해삼을 한 통 잡아 오셨는데 고향이 충청도인 신랑감

은 못먹는다고 입도 안데고, 동생들은 개불이며 굴을
'
채취해서 새손님 준다고 올려놔도 먹지를 않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충청 북도 에선 청국장이 으뜸이요 생선

이라고 해야 간 고등어와 동태만 먹었다니....

우리 고향에선 그당시 싱싱하게 살아 있는것이 아니면

먹지 안았는데 그것도 생선 축에드는지 알수는 없지만

아뭏든 신랑감은 우리 집에 가서 바지락국, 파래 무침

청달게 무침, 해삼, 게불, 이런건 하나도 먹지 못하고

김치만 오는 날까지 먹다가 왔답니다.

서울 와서 결혼 날잡고 (5월 15일) 예식장 계약하고

신혼 살림집 얻으로 다니고 동분서주 하고 다니는데

그이는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니 놀러 다니느라 얼굴도

볼수가 없었습니다.

시댁에선 아이도 나아야 되고 하니 양장점을 그만두라고

해서 양장점도 정리하고 신혼 살림방을 구로동 에다

얻었는데, 그때 생각으로 양장점을 다시 차려야지 하는

생각이었죠.

남편이 될 그남자...!

7 남매의 막내로 그런데로 살고 계시는 형님들과 누나

들에게 언제라도 용돈을 타서 쓸수있는 그이와 !

나는 6남매의 맏이로 객지에서 17세 때부터 혼자 벌어

생활 하지 않으면 누구 하나 ,밥 한끼 줄 사람도

없는 처지....

첫눈에 반해서 만났고 데이트 할땐 좋은 점만 보이더니

막상 예식장을 잡아놓고 나서 부터 하나 둘 나타나는

철없는 남편의 행동은 급기야 예식장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나는 당신과 결혼을 못하겠으니 없던 일로 하고 아이는

내가 혼자 키우겠으니 그런줄 알고 있어요"

내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이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안그러겠다며 제발 화를 풀라고 싹싹 빌어 나는

남자가 이렇게 비는데 용서를 안할수가 있나요?

드디어 1976년 5월 15일 종로에 있는 예식장에서 웨딩마치를

올렸답니다.

한마디로 !속았구나 ~~~속았구나~~너는 ~~앞길이~~

훤하~~~다~~~~~~~

신혼여행은 부산으로 다녀와 우리는 신혼의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남편은 결혼과 동시에 유락 대리점을 그만 두고 실업자

였고 나또한 양장점을 그만 두어서 우리는 둘다 실업자

였죠.

<남편의 하루일과>

12시까지 자고 오후2시 시댁으로 출근 어머님께 용돈 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밤 12시께 집근처 생맥주 집에서

아가씨와 어께 동무하고 술마시기 ...

술 마시는건 어떻게 아냐구요 ?

하도 안와서 기다리다 뒤따라갔죠.

하루도 집에일찍 들어오는 날이 없고 밖에서 놀다

통행 금지시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집에 들어 오곤 했습

니다.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자식을 부양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은

어느 곳에도 찾아볼수 없었고 나는 점점 어두운 앞날을 예감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