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1년째인 지금,
63kg 였던 남편은
현재 78kg 가 되었고
당시 44kg였던 나는 46kg이다.
시댁 가면 시댁식구들 나보고 그런다.
하이구...어쩜 저렇게 아가씨처럼 보일꼬...
말이 좋아 아가씨지, 배배 꼬인 내 몸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댁 식구들 남편을 보면
역시 나이가 들수록 풍채가 나는구만...
그러면 시어머님은 그윽한 눈길로 남편을
응시하고...
친정 가면 친정 식구들 날 보고 한숨을 쉰다.
특히 친정 어머니,
"신랑 밥이 가장 편하다던데 너는 어찌
살이 복실복실 오르지도 않냐..."
그러다가 사위를 보시면 우리 남편은
장모님 눈길에 움찔 한다.
물론 웃으며 말씀하시지만 남편도
장모님의 말씀, 그 숨은 뜻을 안다.
"자네는 참 풍신이 좋아지셨네.
운동을 좀 해야되지 않겠나?"
"살 자꾸 찌면 당뇨도 오고
혈압도 오르고...안 좋네.
그런데 쟤는 왜 저렇게 살이 안 찌나?
얼굴이 벌개진 남편, 말없이 웃기만 한다.
또다시 다가온 휴가철,
남편은 보름전부터 느닷없이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집 앞 공원에서 저녁마다 달리기를 한다는데
아니나 달라, 당신도 같이 뛰지 않을래?...한다.
무엇을 하건, 어디를 가건,
마누라가 앞장 서지 않으면
사타구니에 불덩어리가 들어와도 꼼짝을 안하는
성질인지라 왠일로 운동을 다하나...했었는데
결국 이번에도 나를 앞세울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지금 이 모양새로 친정을 가면
장모님에게 운동 좀 하지...그소릴 또 들어야 하니
단 몇 kg라도 살을 빼는 성의를 보이고
처가에를 가도 가야 하는 것이다.
의도는 좋은데 매일 밤 내가 먼저
운동복 갈아입고 집을 나서야 뒤에서 따라온다.
퇴근이 늦거나 회식을 하면 자기는
당연히 달리기를 건너뛰는 것이요,
술자리에서도 나한테는 전화를 걸어
당신은 오늘 뛸거야, 안 뛸거야?...
확인을 한다.
그러면 여유가 없는 성격인지라
나는 화가 나면서도 혼자라도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장을 뛰고 온다.
한번 하기로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고집이 있는지라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뭔가를 깨달으라는
뜻으로 나는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인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주객이 전도되도
한참이 전도됐다.
운동은 내가 하고, 남편은 운동하는 나를
지도, 내지는 감독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주 비가 올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는 운동장을 뛰었다.
남편은 무리하지 마...한마디 하고서는
쿨쿨...참으로 마음 편하게 퍼대잤다.
내가 열심히 하면 자기도 따라오겠지...
믿은 내 생각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남편은 처음부터 운동해서 살 뺄
의지가 없었던 것일까?
처음엔 이틀 운동하고 하루 건너뛰더니
이제는 하루 운동하고 이틀을 빠진다.
오늘이 금요일, 기다렸다는 듯
여보...나 오늘 회식이야...
술 많이 마시면 당신만 뛰고
내가 스탠드에 앉아 당신을 지켜보께...한다.
또 나만 운동하라는 것이다.
나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앞세워 밤마다 운동한다는 것을 알면
아마 친정 어머니는 싫은 소리를 하실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운동하는 것을 비밀에 부치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땀을 흘리는 것인데
전화를 받고 보니 화가 난다.
아침부터 오늘은 제발 비가 오기를,
그래서 내가 스탠드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운동장을 도는 남편을 바라보고 서 있기를
애타게 원했건만 이시간까지 비는 오지도 않고
남편도 오지를 않고, 오늘도 나 혼자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을 탓할 것도 없다.
그저 그놈의 회식이 웬수요,
운동보다 기다리는 마누라보다
친구 좋아하는 남편이 문제요,
무엇보다 의지 박약인 그의 성격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