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애들이 여름방학 하면
시댁에 가서 며칠, 그다음에
친정에 가서 며칠 있다가 토요일에
남편이 퇴근하고 친정에 오면
애둘, 나, 남편은 예약해둔 충무로
휴가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다음주에 애들과 시댁에 가는데
어제 퇴근한 남편이 뜬금없이
이번주 토요일에 시댁에 다녀오겠단다.
시댁은 대구, 서울에서 한번 다녀오면
못들어도 40-50만원 비용이 들어간다.
5월말에 시아버님 제사 다녀온지가
두달도 안되었다.
빠듯한 월급쟁이 살림이라 내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남편의 시댁행 이유인즉,
원래 계획대로 하면 자기만 시어머니를
뵙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5월달에 어머니 뵙고 왔잖아?"
이성은 안그래야지...하는데
그만 가시 돋친 말이 나오고 말았다.
말은 안해도 처가에 가서 장모님 뵙고서
휴가 떠나는게 시어머님께 미안한 모양이었다.
살벌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부모 옆에서
아이들은
"친할머니 댁에 가기 싫어요.
할머니가 언니(시누 딸) 때리는거 봤는데 무서워요."
남편의 표정이 바뀌면서 애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할머니 찾아뵙고 그러는건 좋은거야..."
물론 좋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핑계거리를 만들어내서
한달에 한번 꼴로 길바닥에 돈을 깔며
시댁 갈 건수를 만드는 남편이 해가 바뀌고도
벌써 7월이 되었건만 올해 장모님 얼굴은 뵌적이 없다.
설날에도 직장 때문에 시댁에만 갔다가
남편은 서울로 바로 올라오고, 나만 애들 데리고
친정에 갔다.
50대 중반인 시어머님,
역시 같은 과부로서 내일모래가
70이신 친정 엄마.
아들 없는 집의 장녀인 언니와 나는
이삼 년 전부터 어머니의 장례 때 연락해야 할
친척들을 명절 때 찾아뵈면서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결혼 11년 동안
남편은 처가집을 제외하고 처가친척 집에는
단 한 곳도 간 집이 없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요,
장남이라는 이유로 외갓집(시어머님 친정)
대소사에까지 나와 같이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면서도
정작 처가에는 아는 친척 하나, 아는 집 하나
없다니.....
멀리서 온 사위가 힘들까봐 친정엄마가
애정으로 배려해준 결과였다.
"당신은 올해 장모님 얼굴 한번 봤어?"
쏘아 붙이는 내 말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빈말로라도 저희들 이사했으니 장모님 며칠 다녀 가십시오...
하는 인사 한번 했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큰 싸움이 목적이 아니라 본가와 처가에 동등하게
관심을 쏟도록 하는 것이 싸움의 목적이니까.
시댁은 사돈의 팔촌까지,
남편의 외갓집,이종사촌 형제들에
그 배우자에, 그 자식들까지도
바리바리 얼굴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건만
결혼 11년에 남편이 아는 처가 친척은......?
올 설날 때 삼촌댁에 인사를 가는데
또 오지 못한 사람은 남편 뿐이었다.
친정에도 엄연히 제사가 있는데
남편은 지금껏 전화 한번 드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늘 뵙는 시어머님, 시할머님,
작은 시아버님, 큰어머님, 큰외삼촌, 작은 외삼촌,
시이모님에 그 조카들...
계절마다 달마다 보다시피 찾아가면서도
친정에 갈 일이 있으면 이렇듯 얼토당토 않은
억지를 쓰며 싸움 아닌 싸움을 건다.
마지막엔 가지마라, 안간다..로
싸움은 끝을 맺고 우린 지금까지 서로가
침묵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후 7년동안 매일 드린 전화,
그리고 3-4일에 한번 꼴로 문안전화를 드리다가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안부전화를 한다.
물론 남편은 어머님께 전화하지 않는다.
당연히 장모님에게도 전화하지 않는다....
말로는 항상 어머님이나 장모님이나
똑같이 마음을 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말로만 하는 말일 뿐이다.
내 가슴에 서운함이 이토록 쌓였는데
어찌 똑같이 했다고 할 수 있나.
아침에 뚱한 얼굴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삐돌아, 올 추석까지 삐져 있어라."
하고 혀를 내밀어 메롱...했다.
어이가 없는지 씩 웃고 출근하는 남편.
나도 친정엄마처럼 아들이 없는데,
엄마가 우리 키운 것처럼 딸 둘이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럼 나도 이다음에 엄마처럼 이런 일로
섭섭한 일을 당하게 될까?
아니아니, 남편이 그때 가면
나나 엄마가 얼마나 서운해 했는지,
자기도 똑같은 일 당하면 그땐 알까?
하지만 그땐 엄마가 안계실 것이다.
무심한 남편도 오늘의 일은 까맣게
망각의 강 뒤편으로 던져버린 후일 것이다.
시어머님은 좋으시겠다.
이토록 효심 지극한 장남이 있으니.
이러니 다들 아들 낳으려 기를 쓰는 모양이다.
날은 더운데 내 가슴은 답답하고
눈 앞이 아득하여 그저 암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