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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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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이야기 11. (수제비)


BY 손풍금 2002-11-29

5년 전 겨울.
육 개월 동안 혼자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산언덕에 방을 하나 얻었었다.
주인 내외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셨는데 방을 계약하러간 첫날, 나를 바라보던 두 어른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나는 결단코 아무 말 안했는데... 혼자 지낼 거라는 말밖에 안했는데...

꽃 수술과도 같은 연미색 바닐라 향 풀어 넣고 따뜻한 물을 넣어 반죽을 한다.
거리에 나가 손수레 앞에 서서 종일 빵을 굽는다.
멍하니 고개 들어보면 어디선가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닌다.
그래, 날아다녀라. 자유로운 너는 어디든 가서 네가 품을만한 자리에 씨앗을 옮겨놓고 또 꽃을 피우겠지. 피우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라. 모두에게 사랑받는 얼굴을 들고...

어느 날은 움직임이 없어 풍경화 속에 내가 들어 있는 듯했다.
그 그림 속을 걸어 나와서 장난스런 아이들과 뒹굴고 부딪치며 살고 싶어졌다.
시간이 너무도 고요해서, 참혹하리만큼 고요해서 그 고요 속에 그대로 잠들 것 같았다.

행여 말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부러 소리를 내어보기도 했다.

“아가야, 내 아가야, 당신, 엄마아, 오빠아. 나야. 나. 나 잊어버렸어? 기차 타고 싶다. 엄마가 끓여준 칼칼한 김칫국 먹고 싶어. 비 온다. 비가 와. 나 이젠 잔다. 나 지금 밥 먹어, 나 지금 울어”하고 말 연습을 했다.
하루 종일 손수레에서 빵을 굽고 집으로 돌아가면 불이 꺼져 있다. 아무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다.
열쇠를 찾아 방문을 열면 어둠이 방안에 깊게 고여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면서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려면 힘을 내야 하는데, 기껏 죽지 않으려고 밥을 먹었다. 밥이 안 넘어가면 죽지 않으려고 죽을 끓여먹었다.
부지런히 먹긴 먹었는데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처녀 때 몸무게보다 가벼워졌다.
덜컥 겁이 났다.
입던 옷이 헐렁거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아 버렸던 그 시간.
나를 위해서는 반찬 한 가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저 붙어 있으니 목숨이었던 게다.
살면서 돈을 아까워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시절 죽을 끓이든 밥을 끓이든 나를 위해서는 쌀 한 줌 사는 돈이 아까웠다.
하루 일을 마치면 팔리지 않은 빵 반죽이 삼분의 일 정도 남았다.
하루 종일 발효하여 더 크게 부풀어 오른 빵 반죽. 쓰레기 봉투는 240원. 남은 반죽 버릴 쓰레기 봉투값도 아까웠던 때다.
팔리지 않아 남은 밀가루 반죽을 설거지 세제 대신 쓰기 위해 얼마간 떼어놓고 나머지로 수제비를 끓였다.
이스트와 바닐라향과 설탕가루가 든 반죽으로 끓인 수제비. 달착지근한 게 중국집을 찾아들면 느껴지는 향료냄새가 끓어올라 고개를 외로 꼬기도 했다.
그래도 그 수제비를 먹었다.
쓰레기봉투 값도 줄이고 쌀값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해 빵 굽는 손수레가 팔릴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혼자 수제비를 끓여먹었다.
사는 게 무.서.워

집 뒤로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크다는 한밭도서관이 있었다.
늘 바라보기만 하고 지나쳤던 길이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 만에 찾아가는 여유인지 빨라졌다.
열람실에 앉아 책을 보고 넓은 도서관 곳곳을 헤집고 다녀보기로 했다.
지하에 있는 가족열람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여길 오면 얼마나 좋아할까...
열람실을 나오는데 갓 지어낸 밥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냄새를 따라 내려가 보니 도서관 식당이었다.
밥 냄새에 이끌려 들어갔는데 우동은 칠백 원 , 밥값은 천 원이다.
점심메뉴는 카레라이스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 원을 내고 카레라이스를 접시에 받아오는데 침이 절로 꿀꺽 넘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먹는다. 밥이 달다.
얼마 만에 밥을 먹어 보는 가.
다시 열람실로 올라가 커피를 마시는데 이렇게 호사스러울 수가 있을까.
두고 온 아이들 생각만 제외한다면 아무 것도 부러운 것이 없었다. 소강당에서 영화상영을 한다는 공고문도 붙어 있었다.

어두운 영화관을 찾아 들어가 앉아 있자니 내가 우스웠다.
내가 낯선 도시에 흘러들어와 홀로 산다는 것도 우스웠고 걸어다니는 것도 우스웠고 수제비를 밥 삼아 먹은 것도 우스웠고 밥을 앞에 두고 감격하며 먹은 것도 우스웠고 푼돈을 받아 꼬박꼬박 예금을 하며 매일 통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우스웠고 내가 거리에서 빵을 굽는 것도 우스웠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우스웠다.
나를 뒤로 하고 걸어가는 저 사람도 우스웠고 뭘 먹을까 고민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우스웠고 밥을 남겨놓고 나가는 사람도 우스웠고... 다 우스웠다.
사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웠다.
도무지 현실감 없는 세상이 모두 우스웠다.

그 후로 비가 와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면 으레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나의 성역이었다.
나는 여전히 바른 자세를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았으며 열두 시가 되면 지갑에서 돈 천 원을 꺼내 맛있는 밥을 사먹었고 백 원으로 커피를 뽑아 먹었으며 전시관에 가서 그림을 관람하며 오후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삼층의 열람실로 들어가 신간서적을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
다시 찾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즐기면서 서서히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혼자 산 적도 있었네...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그 집을 벗어나도록 숨죽여 운 날이 서너 번은 있었던 것 같다.
한밤 달빛 밝은 창가에 노부부의 발길이 멈추었던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