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주말이었어요.
11월답지 않은 화창한 날씨, 맑은 하늘, 포근하기까지 한 한낮의 따슨 햇살이 정말 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게만 하였어요.
좋은 시간을 보내셨지요?
저는 친정집에 김장을 하러 다녀왔지요.
'어머님, 친정집 김장하는데 좀 도우러 다녀와야겠어요...'
'그래... 가서 많이 도와드려라. 몇 포기나 하신다냐?'
'50포기요... 언니네 김장이랑 함께 한다네요.'
빈 김치통을 하나 챙겨오라는 친정엄마의 말씀에 따라 적당한 김치통을 하나들고 쌍문동에 있는 친정으로 향했지요.
아이들 학교 끝나고 점심 대충 챙겨먹고 출발하니 토욜 퇴근시간과 겹쳐서인지 무척 차가 밀렸어요.
마당 가득 자리를 펼쳐놓고 엄마와 언니가 이미 속을 버무려 넣고 있었어요. 빨간 고춧가루 색깔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어요.
삶아 놓으신 돼지고기보쌈에 김치를 싸서 몇번을 먹구 나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배추속을 버무려 넣으며 제가 언니에게 물었어요.
'언니! 지금 당장 아무거나 언니 맘대로 뭔가 하라고 하면, 무슨 일이 하고 싶어?'
'난 공부 무지 열심히 해서 박사도 따고, 진짜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 모든 학생이 우러르고, 학부형들에게 칭송받는 교사말야...
얘! 그냥 무늬만 교사인 사람들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중학교 교사인 언니는 뭐든 굉장히 열정적으로 하는 스타일인데,
아마 그 방면에 일인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난 산 속에 들어가 혼자 농사지으며,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고, 음악이나 듣고 그렇게 신선처럼 살고시포...'
'신선이냐? 난 그러기 싫어.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멋지게 성공해야 하잖아.. '
언니와 나는 '한번 태어난 인생'에 대해 배추를 다정하게 버무리며 얘길 나누었지요.
언제 이렇게 조곤조곤 우리끼리 얘기 나눌 시간이 있나요?
집안행사에 모이면 이것저것 일만 하다보면 그냥 헤어지기 쉬운데 김장은 시간이 길다보니 여러 얘길 나눌 수 있더군요.
김장의 장점일까요?
여자들끼리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맘껏 나눌 수 있는 허락(?)되어진 날..
겨울이 다가오면 대한민국의 모든 주부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일이 바로 이 김장이잖아요.
배추 50포기와 알타리 8단을 다 담그고, 설거지를 잘 하는 제가 뒷처리를 몽땅 하고나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지요.
(전날 엄마,아버지께서 해놓으신 일이 많은 덕분에 수월했답니다)
여늬 해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의 행동이었어요.
그많은 마늘을 며칠전부터 혼자 다 까놓으시고 절구에 찧어주시고, 파도 다듬어 주시고, 배추도 두쪽을 내어 소금물에 담아주셨다잖아요.
김장하는 동안에도 이것저것 그릇을 치워주시거나, 마당과 골목길을 물청소 해주시는 등 아버지의 역할이 눈부셨어요.
첨이예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
늘 여자일이거니 하고 뒷짐지시고 맛만 봐주시고, 잼있는 농담 몇마디만 던지시는 줄 알았건만 엄마 혼자 고생하는 거 안쓰럽다고 많이 거들어주셨더라구여...
세월 탓인가요?
사랑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아주 사소한 데에서부터 비롯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장김치를 많이 먹고 왔더니 말도 길어지는 것 같네요.
한 통 가득 담아오고, 겉저리김치 또 따로 담아와서 점심, 저녁 우리가족은 아주 맛있게 먹었지요.
'아주 맛나다... '
시어머님도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요.
맛있는 김치 한가지면 백가지 반찬이 안 부럽잖아요?
김장철이 시작되었는데, 다른 님들은 언제 하시나여?
사소한 데에서부터 그렇게 사랑을 만들어 나가는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