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조용히 듣는 일에 열중하며
따뜻한 미소로 화답하는 ...
그러나 가끔씩은 내게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정말이지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나를 만나기전 그 친구는 비교적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와 나는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유년시절 우린 하나 같이 어느 정도의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그렇게
지금은 어느정도 현실과 타협하듯 살고 있는 것도 그랬고,
무심한 남편들 때문에 하는 가슴앓이의 정도도 거의 비슷했다.
그런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그 친구와 난 한 직장의 동료로 만났지만
서로의 분신을 보듯 그렇게 서로를 헤아려줄 수 있어서 살아가는 데 참 큰 힘이 되어 준다.
얼마전 그 친구가 전화를 해서
이은미의 라이브 컨서트 티켓을 예매할테니 함께 가잔다.
한 15년전쯤에도 그 친구와 난 이광조의 라이브 공연에 함께 간 기억이 있다.
그녀에게는 위로 아들 하나에 인형같이 이쁘게 생긴 쌍동이 딸이 있다.
딸만 둘인 나와 그녀의 가족들이 만나는 날에는
어른들 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자고 하니
아이들도 기대가 되는지 마냥 설레어하는 눈치였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며 직장다니다 보면
처녀시절처럼 그렇게 자주는 그런 공연무대를 접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정말 이번에는 너무 오랜만의 외출인 셈이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친구를 위하여 보여줄 수 있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참 따뜻하다.
누구보다도 난 이은미라는 가수를 좋아한다.
TV에는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래하는 그녀를 만나면 가슴속까지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예전에 이루고 싶어하던 꿈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더욱더 그러한지도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에 심취해 보는 그 저녁
아이들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의 음악도 있었겠지만
폭넓은 음악세계를 접하게 해 주고 싶었고,
그렇게나 즐거워하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잠시동안 지켜보는 즐거움
또한 남다르다.
자신의 영역에서 죽을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그녀...
이은미라는 한 여자를 만나고 나니
한 걸음쯤 비켜서서 지금의 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듯 하다.
우리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
비록 도덕교과서가 아니고서도 뭔가를 다시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소중한 시간이다.
친구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그렇게 정겨운 그 저녁에
우린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한적한 레스토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도란 도란 이야기꽃을 피워 댄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앞으로 몇명의 친구를 더 만나게 될지는 모르나
20년지기 친구와의 오랜 우정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두고 두고 추억할 꺼리를 만들어 준 그 친구가 아주 많이 고맙다.
함께 하지 못한 두 집안의 남편들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도
여자들과 아이들끼리 어우러져 가끔씩은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다.
남자들이 너털웃음 담아낸 소주잔을 기울이며 삶의 시름을 잊듯
우리도 그렇게 우리들만의 색깔을 담아낸 와인 한잔을 마시는 시간이
힘든 삶의 터널을 건너는데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는
작은 믿음으로 ...
그녀와 난
앞으로도 오래도록 진한 우정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아픔까지도 함께 나눌테지 ...
살다가 너무도 힘이 드는 날이면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가을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행복한 시절임을 알고 난뒤의 환한 미소 머금고
거기 그렇게 언제까지나 서 있을 수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