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싹, 쓱싹...................."
근 한달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 머리가 돌기 직전 새벽 두 시에 단잠을 자던 터였다.
순간 짜증이 났다. 내 짜증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빗자루는 제 할 일을 다하려는 듯
30분 정도가 지난 다음에야 그쳤다.
이 동네에서는 드문 소리였기에 창문으로 빼곡 쳐다보니 며칠 전 이사온 아래층 가게 아저씨였다. 아직 그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기전이라 일단은 후한 점수를 주기로 했다.
아줌마는 나이가 나하고 동갑이었기에 주인이랍시고 행세하기는 애시당초에 글러먹은 터였다. 아저씨는 5살 위인데 일하다 허리를 다쳐 슈퍼라도 하려고 한단다.
" 그 집 여잔 좋겠다. 우리는 결혼한지 19년이 다되도록 빗자루 한 번 잡아본 일이 없는데....." 지금까지도 깊은 잠 속에 빠져있는 남편을 보며 별 게 다 부러워 심통이 났다.
두고 보니까, 그 아저씨는 인사성도 밝고 부지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살점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붙임성이 좋았다.
처음 하는 장사에 무척이나 쑥스러워 하는 것도 보기에 그리 썩 나쁘지 않았다.
얼마동안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다.
먼저 이사간 사람들이 청소하고는 담을 쌓았던 터라 그런 면에서는 고맙기까지 해 좀 비싸더라도 그 집 물건을 팔아주려고 노력(?) 했다.
새벽에 들리는 빗자루 소리가 뜸해져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작심삼일을
어찌 타파하겠는가. 빗자루 소리가 점점 안 들려도 그려려니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아저씨의 술버릇이었다. 때론 정겹게 들리는 자기 식구들한테 내지르는 욕설소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자기가 장사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손님들하고 벌이는 힘 겨루기, 그게 문제였다. 당연히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고 그 아저씨는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았다. 음료수 외판을 하는 아줌마를 달달 볶는데는 아무리 남의 집일이지만 한심하기조차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이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술 마시고 난리를 친 다음 날은 꼭 그 아저씨의 새벽 비질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식구들한테의 미안함이랄까, 자기 정화 차원이랄까, 그 다음날 나를 보며 면구스러워하는 표정과 함께 비질소리는 더 이상 내 후한 점수 보태기에 보탬이 안되었다.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30도가 넘는 더운날이라고 한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에 막히는 숨을 간신히 토해내며, 집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빨리 가서 찬물 한바가지 끼얹고 냉장고에서 먹어주길 기다리며, 얌전히 몸을 식히고 있을
수박조각에 아량을 베풀어야겠다 는 생각으로 내 발걸음은 경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 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고함소리가 길 밖에까지 춤추고 있었다.
"휴! 또 시작이군."
덩치가 슈퍼아저씨의 두배 정도 되는 사람과 젊은 새댁-아마 그 덩치 좋은 아저씨의 아내인듯함-을 상대로 2:1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가보기에도 그건 상대가 되지않는 싸움이었음에도 우리의 아저씨는 아랑곳하지않는 무모함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욕설까지 곁들이면서....
"아! 이젠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일련의 모든일을 해낼 수 있는 고수가 되었구나!"
하지만 아무리 말싸움의 고수라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몸싸움의 고수로 이어질수는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싸움에 끼어들어 우리의 아저씨가 멱살을 잡혀 내팽개쳐지기 직전에
떼어놓는데 성공했다.
알고보니 우리의 아저씨가 사소한것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욕설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이고! 그럼 그렇지. 제 버릇이 어디가겠는가?'
"아저씨! 내가 보니 아저씨가 잘못했네요. 마음에 좀 안들더라도 좋은 말로 해결을 해야지,
왜 욕설먼저 사용해요? 그만하세요."
두배의 덩치를 가진 부부를 간신히 보내고, 어느새 가게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아저씨를
따라 들어가,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몇가지 주섬주섬 챙겼다.
그때까지도 고개를 외면하고있는 아저씨에게 계산을물어보며,
"점심은 드셨어요?"
라고 은근슬쩍 미안함을 내보였다. 그리 미안한일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계산 때문에 어쩔수없이 고개를 돌린 아저씨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는게 아닌가?
이게 뭔 일이람!
50이 다된 아저씨가 같은집에 사는 사람으로써, 같은 편을 들어주지않고 다른사람의 편에서
자기를 나무(?)란데 대한 서운함을 눈물로 표현하고있다니!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이건 또 뭐야?"
그것은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못한 그 무엇이었다.
"상관마세요"란 아저씨의 대답을 뒤로 들으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무어라 정의되어 질 수 없는 감정이 그 뒤 아저씨의 행동을 더 이상 비판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늘밤도 12가 넘었다. 밖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그 아저씨 또, 어떤 일단의 여자들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욕설까지 하면서....... 적어도 그 동안 욕설은 자기 식구들한테만
해당이 되었는데. 갈수록 태산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또 내일 새벽에 들을 힘 넘치는 비질 소리에 잠을 설 칠 것이고, 면구스러워하는 그 아저씨의 얼굴이 보기 싫어 며칠 동안 가게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 밖에 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