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힌다. 집안에 들어서니 이리저리 나뒹구는 옷가지가 초라한 웃음을 흘린다. '둘째는 지 혼자 아적 묵고, 짐 꾸려서 기숙사로 들어갔나?' 아침에 넣어간다던 이불이 그냥 방에 널브러져 있다. 아마 늦잠을 자서 비몽사몽간에 등교했나보다. '처음이라 생소하고 아직 밤엔 추울 텐데...' 비 맞은 중처럼 궁시렁 대며 주섬주섬 고픈 배를 채운다. 집안을 대충 치우곤 친구에게 전화를 해본다.
"응 내다. 경신도 기말고사 끝났쟈?"
허겁지겁 이불과 베개를 싼다.
"히, 나 땜에 니 까지 무신 난리고?"
야트막한 산기슭으론 사철 푸르고 울창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남향으로 터를 잡아 가슴은 언제나 따스할 것 같아 보인다. 산밑을 따라 흐르는 개울이 운치를 더한다. 자연이 스승이 되고 모두가 학생이 될 것 같은 형상이다. 골짜기 하나하나를 익히고, 사람살이의 원리를 익히기에 안성맞춤인 듯 하다. 교정 안으로 들어서니 배움의 터전답게 아주 안온한 느낌이다. 설핏 보니 왼편엔 큼지막한 강당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교실이 총총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장마 비로 곳곳에 질펀하게 물이 고인 운동장이 나온다. 비탈길 아래 산 쪽으로 자그만 다리 두 개가 실개천 위에 놓여 있다. 한 쪽엔 실내수영장이 버티고 있고 또 다른 쪽으론 빨간 벽돌이 기숙사를 두르고 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기숙사로 연결된 다리를 건넌다. 3학년 14반 김xx란 이름이 적힌 비닐봉지를 사감 선생님께 전해 드리곤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온다. 사위도 점점 어두워오는 데다 평소 학교에 코빼기도 못 내미는 처지인지라...
"와아! 정말 잘 지었네! 경신한테 갖다 대이 입이 딱 벌어진다."
삼거리에 나오니 xx고등학교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이 내리는 교정을 멀찍이 바라보며 지난 번 점심을 함께 먹던 동창의 말을 떠올린다.
"야~들은 티낸다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덕원은 끝났나?"
"그래! 어제 마쳤다. 올부터 기숙사 입주한다는 넘이 이부자리도 안 챙기갔네. 난도 대학병원 예약시간 맞춘다고 좀 덤벙댔거든."
"가~ 새로 이사간 학교가 산밑이라 밤엔 추울 텐데..."
"잠결에 이자뿌고 그냥 갔는갑다."
"좀 있다 내려 온나! 외딴 곳이니 어둡기 전에 내하고 퍼떡 갖다주자."
"됐다 마! 니 신랑 들어 올 때 됐는데..."
"우리 아~ 독서실에 데리다 주고 너거 집으로 바로 갈테니 준비해서 밑에 내리와 있어라!"
"그랄까?" 
담임 선생님께서 부족한 너를 특별히 넣어주신 것 같으니 최소한 다른 친구들에게 걸림돌이 돼서야 쓰겠냐고 닦달만 해댔을 뿐, 에그 칠칠맞은 어미로고......
"골짜기에 쏙 들어가 있어서 캄캄해지만 길이 설어 헤메지 싶다."
어설프게 더듬더듬 한참을 달려 학교입구에 들어선다.
"차 타고 오이 이래 숩지, 디기 뭔 길인 거 같다. 울 아~는 그동안 자전거로 통학한다꼬 힘들었겠다."
"가~가 이래저래 고상이다. 분명 이 쪽 길이지 싶은데?"
산밑으로 닦아 논 제법 널찍한 길로 접어들자 아담한 건물이 보인다.

"차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해서 공부하만 저절로 머리에 쏙쏙 들어오겠더라! 그자?"
"야외 수영장 있는 학교는 다녀봤지만 세상에나 마상에나 실내 수영장이 뭐꼬?"
"옛날 우리가 헤엄치던 그 수영장울타리, 봄이면 개나리꽃이 참 고왔었지..."
"소문으로만 듣다가 눈으로 직접 보이 더 대단한 거 같다!" 
"덕원 보다가 이 학교 보이 정말 비교된다!"
"달랑 건물만 있는 기 우째 삭막해 보이네!"
"우리 아~가 5월 초에 있는 어버이날은 안 신기더만, 스승의 날 되이 강의꺼정 빼 묵고 서울서 일부러 내려왔더라! 덕원학교로 지 선생님들 뵈러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