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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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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궂이


BY cosmos03 2002-07-06

늦봄에 이웃집에서 얻어온 호박모종을 감나무 밑에 심어두엇었다.
그것이 어느새 감나무 잎을 타고
단풍나무잎을 타고는 올라가 올라가 노오란 꽃을 피우더니
탐실한 호박으로 열매를 맺어주었다.

작은 키에 발돋움을 하고
내리는 비도 마다않고 뚝 하고는 따서
사각 화분에 심어놓은 부추와 청양고추 몇개...
도마위에 다져놓고는 부침개 반죽을 한다.

" 다녀와라, 다녀오세요 "
를 끝으로 지금 이시간까지 단 한마디도 못 해보고
사람의 목소리를 단 한마디도 못 들어봤다.
오늘따라...
잘못 걸려오는 전화조차 없다.

추적추적 장마비를 맞으며 동네에있는 작은 슈퍼로 내려가 본다.
" 막걸리 한병 주세요 "
" 손님이 오셨나보아요? "
" 아니요... 혼자 날궂이좀 하려구요 "

그렇게 두마디의 말을하고 한마디의 말을 듣고
아까 만들어놓은 부침재료를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곤
지지직~ 소리가 나도록 들기름에 한조각을 부쳐낸다.

소쿠리에 담아놓고 다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지지직~
" 맛잇겠지? 그치? "
아무도 없는데 나혼자서 말을 해 본다.

아침일찍 출근한 남편.
시험 마지막이라고 딸아이는 미리 허락을 받고는 지금까지 친구 집에서
오지를 않는다.
모두가 뿔뿔히 낮에는 제 볼일들에 바쁘고
비가 와서인지 밖에 있는 개들까지도 조용하다.

자작하게 부쳐진 부침개에서 고소한 기름냄새가 난다.
주방바닥에 앉은뱅이 상을 펴고는
배추김치와 알타리김치
그리고 커다란 공기잔 두개.
수저와 젖가락 두벌씩.

두잔의 잔에 하나가득 막걸리를 부어놓고
맞은편에 있는 잔에 소리내어 잔을 부딪히고는
" 원샷! "
소리내어 말을 한다.

목구멍에 털어넣고 부침한젖가락...김치 한조각.
아무맛도 느낄수가 없다.
혼자서 먹는 점심이 싫어 커피한잔으로 때운터라 맛이 있을법도 한데.
그냥...입과 이빨만 의무적으로 움직인다.

한사발의 막걸리잔을 비운뒤
난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비어있는 공기잔에 다시 잔을 부딪히고는 요번에는
" 부라보! "
를 외친다.

그렇게 혼자서 왔다가 갔다가.
주거니 받거니를 하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오른다.
이미 두조각의 부침개는 다 먹은뒤고
김치의 양도 제법 줄어있다.
막걸리잔을 흔들어보니...
어느새 바닥이 나있고.
" 어어라~ 누가 다 마셧지? "
소리내어 말을 하고는 피식~ 웃어본다.

비가오니 심난한가보다.
혼자서 청승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난 가끔
아주 가끔은...
사람이 그리울때마다 이런 놀이를 하며 지낸다.
혼자서 묻고 답하고.
생각이 움직이는대로 웃고 울고
기쁜생각에는 까르르~ 넘어가고
슬픈생각에는 혼자서 훌쩍 거린다.

딸아이가 올때가 되었는데...
반죽해둔것이 많이 남아있으니 따뜻히 부쳐주면 될것이고.
알딸딸한 내 기분은 지금 참 좋다.
오늘도 혼자서 날궂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
나는
음주글중인데 단속하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