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이 부는 날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한참을 울고 났더니 조금은 후련한 마음도 들고...
그간 한참 글 쓰는 일을 쉬고 있었더니 마음이 다 허전해져서,
참 좋은 내 친구를 위해 이렇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다들 잘 계시는 모습에 위안을 얻습니다...감사드리며,
녹차향기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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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것은 3월 30일이었어.
그날, 겨우내 기침을 콜록콜록하던 현신엄마의 안부가 못내 궁금해서
집으로 안부 전화를 걸었더니,
지난 밤,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친정엄마의 우울한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고....
그래, 시골에서 친정엄마가 와 계셨을 정도로 그간에 많이 안 좋았는데, 내 사는 일에만 바빠서 전화도 게을리 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빠졌지.
다시, 응급실에 실려간 현신엄마의 안부를 물으러 재차 현신아빠에게 핸드폰을 울렸더니, 참 기운빠지는 말씀을 덤덤히도 하시더군.
"현신엄마, 암이래요...."
현신엄마,
지금 내가 쓰는 이 편지를 언제쯤 고스란히 자기 손에 전해 줄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하루 이틀마다 현신엄마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맘을 먹었거던.
맥빠지던 그 말, 암이라는 그 말이 마치 끔찍한 흉기로 머리를 한 대 친 것 같은, 잠시 뇌가 마비 상태에 이르는 듯한 감전상태에 빠졌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는가...
청천벽력이란 말, 그때 처음 실감하면서, 내 가슴이 터지려고 했었던 거 알아?
내가 신이 아니고, 내가 의사가 아니고, 아니 하다못해 병원에서 허드렛 일을 거들어 암에 대해 뭐라도 한 마디 줏어들은 일이 없는 문외한이란 사실이 기가 막히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거 있지..
현신엄마,
작년 여름, 백혈병에 걸려있는 자기 친정언니를 위해 아낌없이, 그렇게 현신엄마의 골수를 기증하고 그리고나서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잖아.
그때 다른사람처럼 몸이 쉬 회복되지 않고, 자꾸 어깨가 결리고,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현신엄마를 보며 어리석게도 나는 골수기증을 하고 나면 다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저렇게 힘든 골수기증이 뭐가 수월하다고, 헌혈하듯 쉬운 일이라고 그렇게 잘못 인식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바보같은 짐작만 했던거야.
나중에 행여라도 누구에게 골수기증할 일이 생기걸랑 절대루 해 주면 안되겠다라고 생각만 했지, 그게 현신엄마 몸 속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거....
우리 인간의 우둔한 머리로 무얼 짐작이나 할 수 있겠어?
지금 창 밖엔 태풍 라마순땜에 비가 요란하게 오고, 바람도 많이 불고 있는지 커텐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어.
현신엄마가 요양 가 있는 그 곳은 어때?
이주일 전에 현신엄마가 살고 있는 집에서 본 현신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잘 먹구, 거기서 주는 약이랑, 여러가지 주사랑 다 잘 맞고 견디고 있어.
밤늦게 텔레비젼에서 하는 병원 24시란 프로그램을 보고 어찌나 울었는지, 내 눈은 화면에 가 있지만 머릿속은 현신엄마가 떠올라 가슴을 치면서 한참동안 울었어.
낼 아침 내 작은 눈이 얼마나 더 쪼그매졌을지 궁금하지?
사람이 알 수 없는 일들이 기적처럼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란 걸 증명해줘.
좋은 꿈 꾸고, 편안하게 잘 자.
태풍이 지나가면 더 굳고 단단한 이삭이 가을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깐,
그치?
사랑하는 맘으로...
2002. 7. 5. (금)
(추신 : 형준이 기말고사가 이제 낼 하루 남았네.
현신이두 요즘 시험이지?
애들이 고생이야...좀 놀면서 크게 내버려두는 세상이 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