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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커졌네요.


BY 봄비내린아침 2000-11-12

울 큰아들은 초등 3학년이다. 그리고 내 나이는 34살이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한 편이고 결혼하고 꼭 1년만

에 큰 아이를 낳았다.

어린탓이었는지 남들처럼 출산의 기쁨이라든가 아이가 첨부터 너

무나 이쁘다든가 뭐 그런기억보다는 힘들고, 지쳐하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바쁘고 잘 돌보아주질 않는데도

다행히 잘 커주는 아이한테서 커가면서 새록 정을 느낀다.

둘째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들이다. 싸우기도 엄청 싸우지만

동성인지라 통하기도 잘 통하는 듯하다. 즈음엔 지들방 들어가

문걸고 뭔가 키득키득거리고 쑥덕쑥덕거리고 하여간 유별나다.

그러다가도 전쟁이 시작되면 사내아이들답게 고함지르고 다 부셔

버릴듯 던지고 깨지고, 한바탕 법석을 떤다. 그래서 내 목소리

는 나날이 커져만 간다.

몇일전일이다. 시댁식구들이랑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신랑이 새로운 매장을 오픈한지 얼마 안되어서 거기에 대해 좀은

심도있는 애기를 하던 중였다. 한참 애기를 하다보니, 컴퓨터앞

에서 아이들끼리 우루루모여 게임에 열중하던 큰아들녀석이 슬

그머니 제 아빠와 나사이에 엉뎅이를 디미는 것이었다.

첨엔 TV를 보기위해서 그러나부다 생각하고, 빼내는 고개를 밀

어넣고 당기며 다시 애기를 시작했다. 조금있다 시어머님과 나

는 동시에 아이의 표정을 읽었고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말았다.

아이는 무언가 알기나 하는듯 제아빠의 사업설명, 자금관련, 앞

으로의 나아갈바에 대해 귀를 종긋 세우고 듣는듯하더니, 연신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대는거였다.

뿐 아니라, 제형에게 붙어앉아 쫑알대고 TV볼륨을 높히는 동생의

입을 틀어막으며 '아빠 애기중이신데 티비 꺼라'며 윽박지르기까

지하는거였다.

신랑의 애기색이 첨시작한지 얼마안되어 힘들고 어려운, 그리고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격감에 관한 어두운 쪽이었으므로, 나는 겉

으로는 웃었지만, 내심 가슴이 뜨끔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앞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것, 아무생각없이 아이의 존재

를 무시한것, 미안하고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반면 성

깔이 유별나고 까탈스러워 밤잠을 설치게하고 나를 힘들게하던

간난쟁이가 성큼 커버린데 대한 놀라움, 또는 허전함, 대견함등

으로 가슴이 미어지는듯 했다.

우리 부부, 넘 바빠서 물질적으로 해달라는건 그닥 가리지않고

해주었지만, 안고 보듬기보다는 할머니네 고모네 이모네 전전하

며 맡겨 기른 시간도 꽤되었다. 그 사이, 아이는 제키보다 훨

씬 커진 생각과 사고를 익힌겔까?

그랬다. 나 모르는 사이,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아이는 성

큼 커져버린것이다. 생각도 키도.

심각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표정과 눈이 그밤이후 내내 내 가슴을

누른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본다. 침대 2층중 늘 1칸은 비워진채로 두

고, 자리쟁탈전, 베개 점령전을 매일밤 치열하게 치르면서도 잘

땐 꼭 엉켜서 잔다. 두녀석.

볼에 가만히 내 볼을 부비며,

'그래, 너희는 엄마 아빠가 사는 힘이지...'

가슴한구석에서 초겨울 찬바람 한줄기 휑하니 이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