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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한 거북이가 매일 나타났다.


BY hyesol 2001-05-11

방생한 거북이가 매일 나타났다


2000년 7월 초하룻날에 나는 남편과 한강에서 거북이 두 마리를 방생했다. 그 동안 플
라스틱 김치통에서 길러온 거북이었다. 새끼 땐 아이들과 함께 방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참 잘도 놀았다. 어언 십 년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결혼하여 집을 떠났고 이제 거북이
도 등이 어른 손바닥 만큼 크게 자랐다. 화장실 구석에 놓여 있는 四角桶에서만 살다보
니 때론 사람들로부터 "애걔걔 저 좁은 물통에서 어떻게 살까" 이런 嘲弄 半 동정 반
소리를 들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좋은 일 궂은 일 다 겪으며 우리 집 터주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북아' 하고 내가 부르면 고개를 내밀고 아는 체를 할 정도가 됐
다. 두 살배기 외손녀가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은 당연했다. 방생을 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친정어머니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
" 얘야, 우리 '북'일 저리 죽일 셈야? 제발 넓은 강으로 보내라. 북이는 靈物이니라. 강
물에 놓아 주면 반드시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마침내 거북이를 방생하기로 결심했다. 운명의 날은 다가왔
다. 우리 부부는 성수대교가 보이는 한강에 이르러 마침내 두 마리의 거북이를 강가에
내려 놓았다. 그런데 내려놓자마자 강물 냄새를 맡고 첨벙 물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
이었다. 눈깜짝할 새에 십 년 因緣이 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말할 수 없이
야속하고 허망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고것들이 저만
치 江心에서 고개를 쑥 내밀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목이 메어왔
다. 문득 한강이 내 집 마당 같이 느껴졌고 그들이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북이를 보기 위해 하루에 둬 번씩 한강을 찾
아갔다. "큰북, 작은 북" 하고 십 여분 동안 부르면 어김없이 여기 저기서 고개를 내밀
곤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두 마리 중에서 좀 몸집이 컷던 북이를 우리는 큰북이라
불렀고 작았던 것을 작은 북이라 불렀다. 여름 내내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강으로 북
이를 찾아갔다. 뙤약볕에서 두세 시간 동한 "큰북 작은 북"을 부르고 있노라면 보통 예
닐곱 번씩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곤 했다. 우리가 한강으로 북이를 만나러 가기 시작한
지 한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큰북이 한낮에 2 미터밖에 안 되는 곳에서 나타나 우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더니 이내 몸을 돌려서 성수교 쪽으로 빠르게 헤엄쳐 가는 것이
었다. 나는 정신없이 이 광경을 전화로 이웃에 살고 있는 딸들과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
에게 전했다. 그리고 멀리 파리에 출장가 있는 아들에게도 전했다. '어머님 참으로 靈物
스럽군요' 수화기에서 튀어나오는 아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큰북이
속삭이는 소리가 금새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젠 저도 큰 바다로 갑니다. 작은
북은 바다로 먼저 갔거든요 저희들 걱정 마시고 몸 건강히 잘 계세요' 나는 그런 소리
를 마음속으로 느끼며 그들에게 결별을 고했다. 이젠 한강에 나가서 더 이상 그들을 부
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푸른 바다로 힘차게 나가서 천년 지고 살아줄 것을 빌어주리
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후 우리가 한강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강에 이르기 전부터
그들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럴 때마다 북
이가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강남문인협회 여름
세미나 때 문인들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SBS TV '어찌 이런 일이'란 프로에
우리 얘기를 소개했던 모양이다. 햇볕이 유난히 뜨거운 어느 날, SBS PD가 갑자기 찾
아왔다. 우리는 거북이를 촬영하기 위해 함께 한강으로 갔다. 우리가 늘 찾아가던 시간
대는 아니었지만 그날도 여전히 부를 때마다 거북이는 뜨거운 햇살 속으로 고개를 내
밀곤 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계속하던 촬영은 끝내 중단되고 말았다. 시청자가 확실하
게 알아볼 만큼 거북이의 모습을 촬영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우리의 속
셈을 미리 알아차렸는지 그날따라 멀리 떨어져서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것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방 물속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잠시 경솔한 짓
을 했구나. TV에 방영된다고 해서 선뜻 허락하고 따라나온 게 잘못이었다. 이런 얘기로
세상에 유명해진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 거북이와 우리와의 아름다운
인연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정을 주는 것만큼 거북이도 우리에게 정을
주었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거북이는 우리의 소리를 감지해냈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랑같은 게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불가사의한 일이었지
만 4개월 동안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11월말부터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서로 보고 못 보는 것은 자연의 理法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날에
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서 기를 때처럼 지금은 거북이가 동면(冬眠)할 때다.
오늘도 나는 머지 않아 봄이 오면 한강으로 달려갈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새 봄에는 거북이를 불러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인연을 영원한
시간 속에 묻어두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