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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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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다 소용없다니깐...


BY 쟈스민 2002-06-08

일 때문에 서천에 가 있다는 남편에게
거기까지 간 김에 꽃게나 좀 사다 달라고 한다.

그곳에서 부여에 있는 시댁이 얼마되지 않으니 대전에 오는 길에 집엘 들렀나보다.

밤 12시가 넘어선 시각에 아파트 아래층으로 잠깐 내려와서 짐좀 갖고 올라가라는 남편의 전화에

홈웨어 차림에 가디건을 걸쳐 입고 서둘러 내려가 보니
아마도 주차를 하러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는지 사람은 없고,
플라스틱 김치통과, 노오란 좁쌀 한 봉지, 푸른 완두콩 한 봉지,
그리고 상추 한봉지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다.

사온다던 꽃게는 보이질 않길래 나중에 갖고 오려니 하고서 일단 올라 왔다.

잠시후 들어온 남편은 빈손이었다.

"근데 요즘 꽃게가 비싸서 못사왔나봐, 꽃게 안 샀어요?" 하고 물으니
"아참 차에 두고 그냥 왔다..."
그러면서 혼자가기 심심하니 함께 가서 갖고 오자고 한다.

얼른 가서 갖고 오라고 하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려 간다.

들고온 스치로플 박스에는 얼음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 위엔 제법 먹음직스러운 꽃게가 살아서 바스락 거리고 있다.

"이게 얼마치야?" "제법 큰 데..."
"그나 저나 시댁에는 좀 갖다 드렸어요?" 하고 물으니

피곤하기도 하고, 잠깐 들른 것이라 꺼낼사이도 없이 나왔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냥 온 모양이다.

살아 움직이는 꽃게를 내려다 보고 있자니 꽃게탕 좋아하시는 어머님 얼굴이 떠올라서
"에이그 꽤나 여러 마리인데, 절반 나누어 드리고 오지 그랬어요"
투정 부리듯 그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꽃게 좋아하시는 거 알기나 해요?"
"아들 다 소용 없다니깐...."

헹여 지나가는 말로라도 꽃게 먹었다는 말을 못하지 싶다.
별건 아니지만 그냥 지나친 아들을 알게 되시면 얼마나 서운하실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멀끄러미 꽃게만 내려다 볼뿐
치울 생각도 미처 못하고 시간만 간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서 내일도 바빠서 꽃게맛 못볼 남편에게 맛보일 요량으로
몇마리를 내어 손질한 후 찜기에 올린다.

늦은 밤이었지만, 출출한 배와 지친 허리로 돌아왔을 그에게
달짝지근한 꽃게 몇마리를 담백하게 쪄내어 건네고는
빨갛게 알이 꽉 찬 속살을 떼어 입에 넣으면서도 난 도무지 맛을 몰랐다.

아니 맛은 있었지만, 전혀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이는 스치로플 박스에 하나가득 상자채 사다 드려야만 될것 같아서
상자안에서 몇 마리를 덜어내어 드리는 일이 조금은 자신이 쪼잔하게 느껴져서
그 일을 못한 것 같다.

아내인 내가 그의 큰 통을 모르지 않기에 구구절절이 말은 안해도
마음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번거로움이 싫어서
보나마나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싣고 온 듯 했다.

"그래도 그렇지 다른데 좀 덜 쓰고 좀 더 넉넉히 사서 드리고 오지 그랬어요."
"다른때 같으면 잘도 그러더니 오늘은 왜 그렇게 속좁게 굴었어요?"

계속해서 퍼부어대는 아내의 잔소리에 질렸는지 남편은 휭하니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차곡차곡 담가 보내신 배추김치가 지금 먹기 딱 좋아 보인다.

요즘들어 뭐 하느라 바쁜지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한 미안함에
제 식구들만 챙기는 것 같은 남편의 속좁은 소견에 대한 못마땅함까지 가세하여
이래저래 심기만 불편해 가지고 잠은 저만치 달아난다.

지극히 사소한 부분 같지만 그런 사소한 데에서 마음을 표현하고 사는 일이
바로 가족간의 정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일것 같은데...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았으면 그랬을까 이해가 되다가도 결과만 놓고 보면
괜스레 짜증이 났다.

다음부터는 꽃게가 먹고 싶어지면 어린아이에게 이르듯 일일이
"어머니 꽃게 좋아하시니까 시댁 갖고 갈것도 꼭 따로 사둬야 돼요...
꼭이요..."

아마도 그렇게 주문을 해야 할 것 같다.

"남자들은 꼭 어린애 같다니깐 ...
에이그 아들 다 소용없다니깐..."

그녀의 잔소리는 밤이 깊도록 계속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