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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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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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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병2


BY rjvna 2002-06-05

별로 유쾌하지 못한 주제로 계속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조금은 답답한 반응들 때문이다. 같은 내용을 비교적 독자가 많은 다른 싸이트에도 올렸는데 두세개의 리플과 이메일로 온 내용들을 보면 대체로 위로의 차원과 나도 그렇다는 동감, 참고 살아야지 별수 있냐는 반응들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반응들이지만 다시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내가 겪는 고통의 차원이랄까 그런 것들이 나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 멀게는 몇백년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가깝게는 바로 내 이웃, 멀쩡히 잘살고 있는 듯이 보이는 보통 며느리들의 가슴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하도 흔해서 없어 보이는 듯한, 그래서 무시당하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무릇 여러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불편을 주고, 어느 특정한 집단에게 지속적인 억압으로 작용하는 문제라면 사회 전체 혹은 일부 선각자라도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노동문제가 그렇고 교통문제가 그렇고 빈민문제가 그렇다.
그러나 유독 고부갈등에 대한 문제만큼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해결법을 제시한다. 참고 살아라, 노인네가 살면 얼마나 사냐, 뾰족한 수가 없지 않느냐, 친정 부모라 생각하라, 도 닦는다 생각하라, 기타등등....

나는 이런 별로 도움 안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고부갈등의 근본 원인이 사실은 개인 차원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도 구조적인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어머니가 더 특별히 악독해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고 어떤 며느리가 더 특별히 불효해서도 아니다. 갈등의 원인이 개인의 부도덕함 혹은 지혜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고부갈등의 원인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론 중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페미니즘 이론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자아 실현이나 생존 조건은 전적으로 남성에 의존한다. 가부장제도가 더 견고하면 할수록 여성의 의존도는 더 심하며 남성을 둘러싼 여성들의 경쟁이 고부갈등으로 표출된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사회와 가정 내에서의 안전판이며 지위와 자기 능력의 실현 도구이다. 것도 유일한 도구인데 2,30년을 키워 온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새경쟁자는 파워 게임의 적이요 경계의 대상이다.
문제는 두 여성이 이런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경쟁을 멈추고 협력해서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연대'해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남성에게 대항하면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첫째는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여자들이 태반이고 알아도 서로의 이해 관계가 얽히기 때문에 연대가 어렵다는 것이다. 해서 며느리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시어머미에게 접근하고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집 안에서의 갈등의 수위는 훨씬 낮아진다.
그러나 연대라는 건 사실은 당사자들이 서로가 평등한 자격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때만 가능한데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적 상황은 고부, 두 당사자가 서로가 동등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시어머니는 전통적 권위만 내세우고 민주적 학교 교육을 받은 며느리는 전통적 권위를 무시하기 바쁘다. 더 나쁜것은 지금의 6,70대가 무학 세대이고 4,50대는 고학력 세대라는 것인데, 윗세대는 아랫세대에게 근거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아랫세대는 윗세대를 은근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화도 연대도 어렵다.
며느리가 눈똑바로 뜨는 것조차 용납 못하는 시어머니들이 많다. 아직도! 며느리가 무엇을 말하려는가보다 뭔가 말하려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단 얘긴데, 논쟁하다가 논리에 밀리면 너 몇살이야, 애비도 없어? 하고 논점을 흐려 놓는 것과 유사하다. 남자들은 회사에서 서열이 높은 직장상사에게 바른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면 실감할 것이다.

가부장제도, 권위주의의 전통 ...이런것들이 개인의 의식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불과 4,5명이 살고 있는 가정 내의 문제 해결을 얼마나 어렵게 하고 있는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고 며느리 혼자 혹은 시어머니 혼자 혹은 어느 개별적 가족이 해결하기엔 중과부적이고 사회 전체가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