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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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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이야기


BY senobi 2001-04-26


봄 꽃들이 지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과 목련이 지고, 라일락과 철쭉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요즘이다.

내 사무실 책상에는 컴퓨터 뒤쪽으로 나지막한 선반 같은 것이 달려 있는데,
이 선반이 요즘 호강을 하고 있다. 높으신 분들의 응접실 탁자 위에나 있을 법한
예술 작품 같은 꽃꽂이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무실 선배 언니의 권유로 일주일에 한번씩 점심시간에 꽃꽂이를 배운지
벌써 3개월째.

자주 보았지만, 이름을 몰랐던 꽃의 이름을 익히는 재미도 있고, 약간은 단조로운
회사생활에 주는 하나의 액센트로 어느새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 되었다.
백합 비슷하게 생긴 청초한 처녀 같은 꽃은 ‘카라’이고, 보라색 안개꽃 같은
것은 ‘스타치스’고…

원래 부처님께 바치는 불화(弗花)에서 비롯됐다는 꽃꽂이는 현재는 일본에서
크게 성하여 일본의 꽃꽂이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꽃꽂이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많다 하니 꽃꽂이는 이제 예술만이 아니라 학문으로도 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다고 했던가. 꽃집의 아줌마도 예쁘다. 늘 꽃을 가까이
해서인지,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듯한 내 또래의 이 꽃꽂이 선생님은, 꽃을 얼마나
풍성하게 쓰는지 거의 재료비만 받고 있는 것 같다. 자칫 삭막하기 쉬운 사무실을
화사하게 하라고 일부러 꽃을 많이 써 주는 것이리라.

지난 주에는 ‘르네브’ 라는 분홍빛이 도는 백합의 한 종류를 주재료로 한 꽃꽂이를
했었는데, 어찌나 향이 강한지 마치 플로랄 계통의 향수를 듬뿍 뿌려놓은 것
같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 층의 리셉션 자리에 갖다 놓으니,
안성맞춤이다. 마치 고급 호텔의 로비를 연상시킨다.

꽃꽂이에 쓰이는 꽃은 주로 서양꽃으로, 자꾸 개량을 하여, 장미 같은 꽃은 그
종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고,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고 있다.

서양꽃에 비하면 우리의 들꽃은 소박하고 애잔하여 어딘지 새초롬한 맛이 있다.


우리 꽃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들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다섯살이 되자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는지 질문이 왕성해졌다.
그 질문 중에는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작은 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묻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어서,무식한 엄마를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민들레, 제비꽃 정도는 알겠는데 다른 것들은 전혀 모르겠고, 지금은 주목(朱木)이라고
확실히 아는 나무를 그 때 아이에게 전나무라고 가르쳐 주었으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주목은 가을과 겨울사이에 빨갛고 앙징맞은 열매를 많이 맺는 침엽수인데,
만져보면 톡 터질 것 같은 보드라운 열매가 많이 열리면 마치 작은 꽃등불을
달아놓은 것 같이 어여뻐서 정원수나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아이가 꽃과 나무에 관심을 보이자, 당장 김태정 선생님이 쓰신 ‘우리산 우리들에
피는 우리꽃’이라는 식물도감을 사주었다. 아이는(다섯살 때 한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 책을 얼마나 열심히 보았는지, 나중에는 책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였다.


그해(1997) 여름에 강원도 청태산의 통나무집으로 여름휴가를 갔었는데, 그 숲속에서
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꽃을 참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기억력은
놀랍다. 이건, 동자꽃, 이건 패랭이꽃, 저건 뱀무, 저 나무는 조팝나무, 이렇게
하나 하나 이름을 대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확인을 해보니, 아이의 말이 다 맞았다.


지난 주 일요일엔 온 가족이 수락산으로 산행을 했었다.

수락산은 찬란한 봄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애기똥풀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산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꽃잎을
떨구어 계곡물이 하얀 꽃잎으로 덮혀 있었다. 진달래는 만개를 약간 지나서 꽃잎들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지만, 하도 많아서 산이 진홍빛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산행을 하는 기쁨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처음 보는 꽃들을 카메라로
찍어 두던지, 카메라가 없으면 잘 봐 두었다가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이름을
찾아보는 일이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식물도감을 찾아 보았지만, 요즘은 검색기능이
다양한 웹도감이 많이 있어서 참 편리하다. 계절별로 색깔별로 찾아보면 대부분은
그 이름을 알 수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이름 모를 꽃’이나 ‘이름 모를 풀’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게으르다는 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님의
시처럼, 이름을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가 있다.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그 꽃은
나의 꽃이 되는 것이다.

안도현님의 시중에 ‘애기똥풀’이라는 시가 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이 시의 끝부분을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엄마
노릇을 한다고, 저런 것들이 장미나 백합의 이름을 가르친다고.’

나이 들어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주전에 갔던 명지계곡의 바위틈에 피어있던 꽃은 그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위틈마다 작고 하얀 꽃이 피어있었는데, 꽃잎은 작지만 꽤 예뻤고, 잎은 꼭
단풍잎같이 생겨서 아이는 이거 단풍잎이 아니냐고 했다. 봄에 피는 흰 꽃으로
검색을 했더니, 20개정도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위나리(돌단풍)’라고 적혀 있는 것을 클릭하여 사진을 보았더니, 바로 그
꽃이었다. 이름을 잘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꽃에는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은 꽃이 많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꽃,
등. 자칭 타칭 '꽃지기’님인 정현도 선생님이 운영하는 사이트(꽃지기를 검색어로
치면 뜬다)에 가보면 그 꽃 이름의 슬픈 전설이 나와 있다. 밥이 익었는지를
알아보려고 밥알을 씹어보다가 시어머님에게 맞아 죽었다는 전설…그 꽃잎이
며느리가 씹다 만 밥알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요즘엔 시어머니가 며느리살이를 하는 세상이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며느리들의
삶은 고달프고도 서러웠던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는 짙은 빨강색의 연산홍과 마이크 케어(일명, 머라이커 캐리)라는
연한 빛깔의 장미가 조화를 이룬 멋진 꽃꽂이가 놓여있다.

바야흐로, 봄은 무르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