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이맘땐...
세상이 그냥 멈추어 버렸으면 했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졌고, 살아서 해야할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살아지는 것이 산 사람의
몫이였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살았으니까요.
어제는 남편의 5주기 추도일이였습니다.
다행이도 이사를 한후 추도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작년엔 방이 좁아 차마 목사님을 모실 수가 없었지요.
좁은방을 보시고, 또 마음아파 하실 것을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앞서기도 했고, 추도일이 주일이기도 했기에 슬며시 피해갔습니다.
20년전엔 건장하신 젊으신 목사님이셨는데...이젠...정년을 앞두신
백발이 성성하신 노인목사님으로 변하셨습니다.
강산이 두번이나 변하는 세월동안 제집의 많은 일들을 보아오시고
처리하시고, 도와주신...제겐 아버지와 같으신 목사님이시지요.
주름살 하나에, 흰머리카락 한가닥이 제 가정 때문에 생기신 것만
같아 참으로 죄송하였습니다.
언제쯤이면 곁에서 지켜주신 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다 갚을 수
있을까...생각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목사님께선 저보다 제 작은딸아이를 예뻐하십니다.
신학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몹시 기뻐하셨고...
지원도 아끼지 않으셨지요.
5월초쯤에 비가 쏟아지던 밤중에 기도를 마치고 올라오니 목사님께서
절 부르십니다. 주실 것이 있으시다고 손을 내밀어 보라십니다.
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두손을 내밀었지요...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시면서 "주일날 ㅇㅇ이를 놓쳤어, 까까
사먹으라고 해." 하시면서 제가 말씀 드릴 틈도 주시지 않으시고
사택으로 뛰어가십니다.
펼쳐볼 수가 없어서 주먹을 쥔채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와서 손을 펼쳐보니 빳빳한 만원짜리 지폐 열장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날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작은녀석을
부르십니다. 한참을 무엇인가 이야길 하시더니...아이가 눈시울이
붉어져 제게로 옵니다. 손에...십만원권 수표가 한장 들려있습니다.
"엄마! 목사님께서 까까 사먹으라시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까까'라 표현을 하시지만 아이에겐 얼마나
유용하게 쓰여질 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 아이에게 이릅니다. "지금 받은 도움을 잊지 말고 잘 간직 했다가
모두 돌려 드려야 하는 거란다. 그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잘
알겠지,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단다."
이사를 하고...
몇년동안 헤여져 있던 제 가구들을 만났습니다.
전, 흰머리카락도 몇개가 늘어났고, 얼굴에 주름도 늘었고, 마음도
변했는데...제 가구들은 몇년전 모습 그대로 제게 왔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만났다는 기쁨때문에...
사람들만 이별을 하며 사는 줄 알았는데...물건들과도 이별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행이도 많은 세월이 흐르지 않고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지요. 사는것이 그저 감사하다고...
한짝만 놓여있던 장롱이 드디어 제짝을 모두 만났습니다.
아무곳에나 놓여있던 TV이며 오디오가 체스트위에 나란히 놓여
졌습니다. 바구니에 담아쓰던 화장품들이 화장대위에 얌전하게
앉았습니다. 몇년동안 앉아보지 못했던 식탁의자에 앉아도 보았지요.
몇년만에 몸을 푹신한 침대에 뉘여도 보았습니다.
반듯한 모습 그대로 돌아와준 가구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섧게 구석방에서 보아주는 사람도 없이
몇년을 보낸 제 가구들 하나하나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트러진 곳도 없고, 흠집도 나지 않았고, 색도 바래지 않은체로...
눈물을 흘리며 실어 보냈던 가구들을 눈물을 흘리면서 맞았습니다.
실어 보낼때...저 가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었지요.
만난다면 몇년이나 걸릴까...많이 걸리지 않고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아이들 친구들이 화분이며 화장지를 사들고 이사한 제집을
찾아왔습니다. 제 아이들보다 더 기뻐합니다.
그래...너희들도 우리가 이렇게 살았던 세월이 마음 아팠었구나...
저와 제 딸들은 참 행복합니다.
곁에서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귀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란지교처럼 부끄러울것도, 흠될 것도 없는 그런 친구들이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저희 세모녀는 그래도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라고... 그 때문에 저희는 많이 행복합니다.
감사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참 다행한 일입니다.
산다는 것은...
다 갖추어 살지 못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진것이 적어 슬프더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마음으로 되뇌이다 보면...
세뇌가 되어 정말 감사해지고 기뻐질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