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노래.하나)
어머니.
박 완서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고 있습니다.
제가 책만 보고 있으면 공부만 하는 줄로 아시던 어머니.
박 완서님처럼 참척은 겪지 않으셨으나 육남매를 홀로서 키우셨을 때.
자식들 하나 하나 여우살이 시켰을 때.
그 아이들이 알토란 같은 새끼들을 낳아서 품에 안고 왔을 때,
한 무리의 집단이 되어 온 집안이 시끄러웠을 때
어머닌 그때 그러셨지요.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그땐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더 많은 시간이 우리 곁을 지나고 몇번의 폭풍이 집안을 스쳐 지나간 후에야 그때가 가장 행복했음을,
생명을 가진 누구나 가장 행복할때 스러질 수 있다면 ... 간간히 생각합니다.
스물 여섯의 준수하고 유능하고 앞길이 창창한 아들을 잃고 써 내려간 어머니의 가슴을 읽어가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서서 소리없이 통곡합니다.
초상집에서 목놓아 우는 사람은 제 설움 때문에 그런다지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쪄놓고 종일 일하고 저녁에 돌아왔을 때 말끔이 비워져 있었다거나,
1등을 했다고 상장을 받아 올때나.
아이들이 한 방 가득 잠을 자고 있던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시던 어머니.
기억을 되돌려 초등학교 다니던 제가 빡빡해서 품기 힘들었던 펌푸물을 새벽녘 일어나 양식을 씻는 어머니 옆에 서서 품고 있습니다.
방안에 언니 ,오빠 ,동생들이 자고
부엌 귀퉁이에선 강아지가 꾸부리고 자고
토끼장이 있고, 닭장에서 닭이 푸드덕 거리고
창고에선 쥐가 들락거리고
텃밭에 싱싱한 무나 배추가 있는 집
변소를 삥 돌아 밤나무가 가득 둘러진 그곳
엄마 옆에서 나는 아직도 물을 품고 있습니다.
겨울날 땅속 깊은곳에서 끌려 나온 그 펌푸물에선 모락모락 김이 솟아 올랐고, 큰 다라이로 가득 물을 퍼 놓고 나면 다라 밑바닥엔 자잘한 모래가 섞여 있기도 했던 그 펌푸샘옆에서
한 사람의 앞날에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는 그 백지로 나는 아직 그곳에 서 있습니다.
오늘이 자기 엄마 생일인줄도 모르고 ....
예순 여덟되신 어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다소 마음 아파도 모른체 해 주시는 어머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하신 어머니.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