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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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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엄마


BY norway 2001-04-14

오늘 아침 잠자리에 누워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삼돌이가 세수하고 옷서랍을 열고 뭐라뭐라 중얼중얼거리더니
지 옷 두 벌을 짝맞춰 나한테 가져와 그러더군요.
<엄마, 이건 오늘 입으면 되고요,
또 이건 내일 입으면 되요...>
무슨 소리냐구요?
제가 빨래를 잔뜩 미뤄놨거든요.

우리 삼순이하고 삼돌이 오늘 아침도 못 먹었습니다.
엄마가 늦게까지 이불 속에 누워 있는 바람에요.
뭐... 집에 먹을 게 있었으면 둘이 차려먹고 갔겠지만,
빵도 없고, 콘플레이크도 없고, 떡도 없고...
그러니 그냥 가더군요.
<엄마, 일어나지 마세요.
열쇠로 내가 문 잠그고 갈게요...>
저도 하루 아침 안 먹었다고 어찌 되는 것도 아니니
<학교 잘 갔다와~~> 이불 속에 누워서 인사만 넙쭉 했습니다.
아침에 시간이 좀 있으면
우리 삼순이 내 지갑에서 돈 꺼내서
빵이랑 우유랑 사와서 지 동생이랑 먹을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너, 엄마 맞니?>
그러시겠죠?
제가 엄마로서 좀 부실합니다.
진짜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만 겨우겨우 한답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아내로서도, 딸로서도, 그리고 며느리로서도
부실하군요. 총체적으로 부실한 여자군요. ㅠㅠ)

하지만 이렇게 엄마가 부실하다 보니,
애들이 튼튼해지더군요.
그리고 엄마가 당연히 밥 차려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애들이 엄마가 해주는 사소한 일도 무지무지 고마워한답니다.
그건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끔은 우리 딸이 지 엄마한테 엄마노릇을 하려고 해서
좀 그렇긴 합니다.

며칠 전 우리 딸이 담임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더군요.
아직 한 번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적이 없길래
통화가 끝나면 바꿔달라고 했지요.
안녕하세요... 애만 맡겨놓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어쩌구저쩌구.. 인사를 했더니,
선생님이 우리 삼순이 칭찬을 마구마구 늘어놓더군요.
영리하고,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르고, 생각 깊고, 착하고,....
ㅋㅋ 기분 좋았겠지요?
지 딸 칭찬해주는 데 기분 나쁠 리가 있습니까?
전화를 끊고, 우리 딸한테
얘, 얘, 선생님이 너 이렇게저렇게 칭찬하시드라.
라고 말해 줬더니,
우리 딸, 엄마를 철없는 아이 쳐다보듯 쳐다보며 그러더군요.
<엄마, 당연하지..
그럼 어떤 선생님이 애 엄마한테 전화로
댁의 애는 공부도 되게 못하고, 예의도 없고,
미련스럽고 못된 아이라고 그러겠어요?
전부 다 인사로 하는 말씀이지...
엄만, 그것도 모르고....>
ㅠㅠ
도대체
내가 칭찬받아 온 아이이고, 우리 딸이 엄마인가?
헷갈릴 때가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