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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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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당잡힌 삶


BY monkew 2001-04-03

아이가 잠을 자야만 내 시간이 조금 나는데 왜 그 시간 동안에는 할 일이 이다지도 많은 건지.

빨래부터 청소, 설겆이, 냉장고 정리 등등의 집안일이 끝도 없이 쌓여 있다. 똥,오줌 기저귀를 손으로 주물주물 거리고, 얼른 설겆이를 하고, 대충 다음 식사 준비를 마쳐놓고, 세 방과 마루를 한 번씩 걸레질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청소하는 동안 세탁기에 돌아갔던 옷가지들을 꺼내 다림질을 하고 나면 구부러진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애가 깨서 운다.

전에는 몰랐다. 그냥 애를 키우고, 짬짬이 시간을 내서 집안일을 하면 그걸로 됐으니까 말이다. 그런데..공부를 다시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책을 잡은 그 순간부터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애가 깨서 노는 시간에는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애 자는 시간에 짬을 내 보려고 해도 이래저래 집안일에 치여 그 또한 어려웠다.

남편에게 저녁에 2시간씩만 애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한 번 보채기 시작하면 지 에미가 안아야만 하는 녀석을 어쩔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뛰어나오기를 몇 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잠시 공부를 미루자, 맘을 비우고, 육아에 전념을 하도록 하자..고 생각을 했다가도 직장생활하는 친구들, 이렇게 저렇게 자기계발하는 걸 보면 머리속이 빠직빠직 거리면서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온다.

친구들, 동창들은 내가 이런 얘길하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젤루 속 편한 아줌마가 아니였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는 그의 사정을 알 수 없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각각의 그릇에 나름대로의 색을 담아내는 걸 보면서 난 도대체 어떠한 그릇이고, 무얼 담고 있나 들여다 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서 답답하다.

원대할 것까지도 없는 목표를 세우고 대단할 것도 없는 작고 작은 계획들을 세워 보지만, 번번히 아이 앞에 무너지고, 내가 해야만 하는 집안일들 앞에 부셔지는 걸 보면 슬프다.

누굴 탓하려는 건 아니다. 만일 탓한다면 내 자신쯤 되겠지. 그러나 번번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날 보면 누군가라도 붙잡고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도 꿈이 있다, 조금만 내 시간을 달라...하면서.

이 정도 되자 가끔씩 못되게도 나도 꿈이 있는데 다른 식구들한테 저당잡힌 거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말 못되게도 말이다.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그런 걸 누굴 탓하는지...내가 야무지게 덤비려면 무얼 못하겠는가..

..하면서도 이른 아침 학교로 나서는 남편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고, 한 번 보채면 꼭 내가 안아야 하는 아이가 힘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