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늘과 우리의 땅에 비가내려 골짜기를 적셨고
바람이 불어 산자락을 돌아 나무를 보듬고 지나갔다
햇살이 고을고을에 내려앉아 화사한 봄과 그늘진 녹음과
심심치 않은 단풍을 보여주더니 잿빛 겨울 숲에서
한국미의 아름다운 본질을 왜곡 되지 않게 추구하신 최순우님
자연과 미술의 아름다운 조화로 한국의 참멋을
안온한 글감으로 온종일 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정갈하고 조촐한 사랑채를 연상한다
한국의 미가 무엇이고 한국인의 참멋에 의문을 던진 지침서에
경의를 표한다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의 단상을 우르르 저 멀리 삼국유사의 시대가
내 좁은 영상에 빛을 비춘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 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작가는 그 오랜 세월동안 의젓하게 너그롭게 전해져오는
그 고마운 느낌을 새로운 감동과 그윽한 안목을 열게 해주었다
이태 전에 무량수전을 둘러보면서 그저 역사책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쯤으로 무심히 지나쳤던 문외함이
내가 가지고 있던 역사관 한국건축 한국미에 대한 전부였다
자연풍광에 알맞도록 조화를 맞춘 비원의 부용당이 그렇고
경회루의 돌기둥이 나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세상살이 울분과 시름을 막걸리 냄새풍기는
터털웃음으로 세상을 관조한 조상들의 지혜로운 탈 놀음이
세상을 물 흘러가듯 바라보았고
천상의 색에 버금가는 고려 사람들의 담담한
심상이 상감청자를 낳았다
아직은 선뜻 발 담그기가 망설여지는 시냇가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예닐곱 마리 오리 떼가 봄을 생동감있게 하는
단원의 "봄시내"는 먹빛의 강도에 따라 봄이 무르익는다
나의 오랜 엘범에는 50여년전의 한 젊은
여인의 빛 바랜 사진이 있다
단정하고 얌전한 가리마 에 쪽진 머리는 한 가닥도
흩트려짐이 없고 갸름하고 단아한 옷매무새에서
나를 많이 닮은 여인이다
그사진속의 여인 같은 "미인도"를 본다
초생달같은 눈썹 잘 오무린 입술 갸름한 얼굴 시원한 목선
미인도는 편향적인 현대미인과는 대조를 이룬다
내 어머니는 결코 미인은 아닌데 나는 왜? 내 어머니의 사진에
미인도가 오버랩 되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나의 어머니는 그 어떤 "미인도" 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최순우님의 글을 통해 한국미 한국인의 참맛을 알게되고
새눈을 트이게 됨을 다행이라 여기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봄이 다 가기 전에 나도 그 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 기슭을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지은이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