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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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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에 맡겨놓고 온 내 남편.


BY 雪里 2002-03-28


며칠을 그이에게 맡겨두었던 아지트엘 들렀다.
이젠 그이것이 아니라 내 아지트인데 어찌 만들어 놓았나 싶어서.

작년 말쯤에 쌓은 석축 사이에 연산홍을 심겠다며 멀리까지가서
사가지고 온 묘목의 크기도 궁금하고 이틀동안을 반나절씩 심은게
고작 사십그루 심었다고해서 얼마나 야무지게 심느라고 그랬나 보고 싶기도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놓고 한번 휘 둘러 보니 가관이다.

지난 장날 사주며 심을 위치 지정까지 해주었던 매화나무가
소나무 밑에서 정확히 삼십센티 거리에 서있다.
만약 새로심은 소나무가 죽지 않고 옆에 심은 매화나무도 산다면
두개의 나무가 붙을 판이다.

그 넓디 넓은 땅에다 심어논 나무들을 보며 난 기가막혀
그이를 쳐다본다.
어쩌면 그리 답답하냐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지만 밖으로 내보내질 못한다. 아침부터 기분 상해 할까봐.
나혼자서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어 보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주먹만한 응어리가 들어 차 있다.

"오늘은 온종일 나무를 심어요. 빨리 심어야 내일 전국적으로 온다는 비에 맞추지."
호미가 돌사이엔 삽보다 훨씬 편하니까 호미를 써요."
"오늘은 햇볕이 강할것 같으니까 썬크림을 꼭 바르고 밖엘 나가요."
"점심은 준비 해 놨으니 늦지 않게 먹구요.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그이가 못미더워서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차에 오른다.

"걱정마, 이 아줌마야, 잘가! 점심 꼭 먹구."
내려오는 차에대고 손을 흔들어 주며 웃는 웃음에 나까지 웃고만다.

저렇게 일에 서툰 사람이 시골이 좋단다.
나무 심는 것까지도 숫자로 계산해가며 십분에 하나씩 심어서 한시간에 여섯개, 다섯시간이면 삼십개...
줄자로 재고 돌로 표시하고, 물 주는 시간이 몇분씩 몇시간...
같이 앉아 듣다보면 속이 터져서 또 혼자만 애가 타는데,
누군 날때부터 일 할줄 아느냐는 말엔 또 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나를 누가 이해 해 줄까.

이제 배우면 된단다.
손가락 갯수만큼만 해가 지나면 회갑을 맞을 사람이.
힘도 써야 느는것이고, 일도 해야 요령이 생기는 법이거늘, 어느세월에 모두 터득해서 나를 편하게 해줄려는지!
미리 앞질러 가는 생각이 핸들 잡은 손의 맥을 풀어 놓는다.

금년 가을이면 은혼식을 맞는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
좌우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여기에 도착해 있다.
성격조차 극과 극인 우리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를 제자리에 맞춰 끼워 지금처럼 돌아가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 이만큼이다.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게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그분들이 항상 계셨기에 참을 수 있는 힘이 길러 진듯 싶어서 이만큼에 서서 생각하면 그분들이 한없이 고맙다.

언제쯤엔가부터 하루에 아주 조금씩 모아 가는 통장이 있다.
나는 언제나 비상시엔 이 돈을 쓰곤 하는데 묘목을 산다고 하기에
계산에 없던 지출이라 그 통장을 내밀었다.
찾아서 쓰라고.

"안돼! 이건 우리 둘만을 위해 가을에 쓸 돈이야. 절대 쓰지마."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것은 전혀 신경 안쓰던 사람이 올 가을을 기억해 놓고 있었다.
둘만을 위해 뭔가를 준비할 계획까지도...

기억하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 한다.
그사람 가슴 깊은 맘속까지 이미 다 알아 버리고 사니까.

이러면서 사는거지,뭐.
나는 그냥 답답해도 또 웃게 될테니까.

길옆의 가로수 가지가 물이 올라 싱싱하다.
강변 공원에 심은 산수유꽃이 아직은 혼자 노랗다.

연산홍 몇그루 돌틈에 꽂느라 너무 늦었나보다.
봄햇살이 내마음을 안양, 환하게 놀리는듯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