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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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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와 뺑덕어멈


BY eheng 2002-03-20

저어기 찬란한 봄 햇살을 받으며 공간을 가로저으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누군고?
하늘과 맞닿기라도 하듯이
땅에 곤두박칠 치기라도 하듯이
오르락 내리락
주거니 받거니, 앞으로 뒤로, 다가서고 물러나고...
맵씨 있는 자태, 날렵한 몸 동작, 우아한 흔들림.

작은 딸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한복만 안 입었지 그냥 그대로 광한루에서 그네 타는 춘양이와 어찌 그리 똑 닮았는고.
그 옆에 삐닥하게 앉아 고개를 모로 숙이고 건들건들 졸고 있는 퇴기 월매도 못 되는 뺑덕 어멈은?... 물론 나다.
잠시 봄볕에 졸고 있다가 문득 하늘을 날아가는 천의무봉, 선녀의 날개를 흘깃 봤다고 느끼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뭐지?
날아오는 제빈가?
정체불명의 비행물체니까... UFO?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비행물체는 그네 타는 아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완벽한 세상을 보았다. 유토피아를! 아니, 느꼈다.
저 봄 햇살을 가르며,
저 따스함을 온 몸으로 받으며
시간과 공간에 가득한 존재의 넉넉함.
너무나 즐거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며 웃고 있는 아이의 웃음.
머리카락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설사 황사바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 해변이 아니라도 햇살은 충분히 밝고(오존층이 파괴되어 자외선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하늘은 파랗고 아늑하며
온도는 적당하고
그 바람에 실려오는 향긋한 새싹의 냄새(거름 냄새가 약간은 섞여 있지만)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완벽함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에 꽉 찬 듯한 이 느낌.

세계를 한 손 안에 쥔 알렉산더 대왕이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당신이 가로막아 햇볕이 비치지 않으니 자리를 비껴주길 원한다던 늙은 철학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내가 드디어 득도할 걸까?)
무엇이 더 필요하랴! 한 쪽의 햇볕만 있으면 됐지.(거의 해탈의 경지 아닌가!)

오늘도 단발머리 춘향이와 청바지 입은 뺑덕 어멈은 봄볕에 나와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완전한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