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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며 버리며 살며...


BY 들꽃편지 2002-03-05

비워가며 살겠습니다.
가야할 길이 멀리 있습니다.

버려가며 살겠습니다.
세상살이가 부질없습니다.

빈 몸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갑니다.
욕심은 털어도 털어도 쌓여지는 먼지입니다.

혼자입니다.
사랑도 이별도 아픔도 슬픔도
죽음까지도 혼자서 치뤄야합니다.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 하루가 늙음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죽음으로 향해가는 산 길입니다.

사십고개를 넘었습니다.
넘어 온 고개보다
넘어 갈 고개가 더 적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아래를 보라합니다.
부는 바람처럼 잡지 말라합니다.
떠나고 찾아오는 계절처럼 소유하지 말라 합니다.

비우며,버리며,살며...

....................................................................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창밖에서 땅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극심한 쓸쓸함이 오면 저 아랫세상이 회색 콩끄리트로 보입니다.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짐이 두 어깨를 누르면
저 아랫세상은 발아래 허공이 되어 나를 끌어 잡아 당깁니다.
이리 살아야 하나 저리 살아야 하나 헷갈림의 정신세계입니다.

일요일엔 책을 봤습니다.
올 신춘문예에 당선된 중편소설"추풍령".
글을 쓰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8년만에 당선의 영광을 잡은 서대수님.
나이는 58년생이면 몇살이지?

"빵에서 똥냄새가 난다.
전경들에게 끌려가는 아빠의 모습이
마치 푸른 배추벌레 한 마리가 개미 떼에게 이끌려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쉽고 술술 풀어 쓰는 문체가 돋보이는 글을 보며 부러움이 대상이였습니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할까요?
서대수님은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글을 쓰기까지의 세월은 인고의 세월임을 압니다.

유령처럼 한 낮에 일어나 버티칼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머리아프게 빗겨 보았습니다.

이쯤에서 돌아간 지난 겨울은
버티칼 그 틈새로 나를 유혹하는 봄이 들어옵니다.
한 오년을 살아 냈나봅니다.

중편소설은 24장입니다. 이걸 16절지라 하나?
페이지로는 48쪽이라...
중년..
중간...
중심...
중대가리.... 히히

아침도 먹지 않았습니다.
점심만 먹고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책을 들고 엎드렸다 누웠다 베개를 기대고 앉았다하며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동아'였습니다.
그 맨 끝에 24장의 중편소설'추풍령'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어찔했습니다.
잠도 실컷자고 책도 실컷봤는데
머리가 텅비어감은 무슨 짓거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사이 저녁은 길다랗게 거실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보일러 스위치를 돌리고 쇼파에 앉았습니다.
또가닥 또가닥 멀건이가 걸어옵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살아가는 숨소리 같습니다.

중편소설까지 다 읽은 시간은 다음날 새벽 2시였습니다.

.................................................................
글을 쓰면서 나를 달래며 살고 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나를 버린 세상,
그래도 나를 태어나게 한 세상이라 끌어안고 달래며 삽니다.
하루를 살면서 일년을 살면서
이곳에 일기를 씁니다.
그러면서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나를 살려내고 있습니다..

사는 게 그렇고 그러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