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는 말이 무겁다.
자주 들러보지 못한 죄스런 맘과,
"얼마나 변하셨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무게되어 내 발에 매달려 있다.
벨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싶었는데
문이 열린다.
벨소리 까지 환자를 위해 줄여놓았다며 내미시는
부인의 얼굴이 편안히 들어 설 수 있게 밝다.
이제 꼭 5 년이다.
오년전 2월 달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무 감각없이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한지가 만 5년이 된 것이다.
어렸을적엔 우리집에 그친구분댁이 세를들어 사셨었고
고등학교까지 동창생인 그분과 그이는 단짝 친구였다.
결혼하여 여행도 부부동반으로 자주 같이 다녔고
철학과 교수님이셨던 친구아버님은 그이가 존경하는
분중의 한분으로 어렸을적부터 좋은 말씀과 칭찬을
많이 해주시어 바르게 자라는데 큰 역할을 해주신 분이라고
지금도 틈만나면 교수님을 떠올리곤, 그말씀을 그대로
아들들에게 전하고 있는 그이다.
그렇게 훌륭하고 좋으신 분 가정에 어찌하여
신은 그런 가옥한 벌을 내리신건지.
이젠 여러해 되다보니 자주 찾아 보지도 못하고
명절때마다 겨우 방문하고는 전화로 안부 물으며 지내고 있으니
긴병 효자 없다는 말을 여기다 쓰면 맞기는 하나 모르겠다.
쑥냄새가 나는 방 침대에 그이 친구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마비가 없는 한쪽팔을 침대에 묶이운채로.
코에 음식 투입을 위해 끼운 호스를 빼버리고
가려운곳을 긁어서 피가 나오게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묶인 손엔 만약을 대비해서 면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저예요, 영규엄마. 알아보시겠어요?"
촛점이 정확치 않은 눈으로 눈을 맞춘다.
입엔 가벼운 미소가 일어난다.
알아 본다는 신호라고 방학이라 내려와 있는
그분 큰아들이 말해줬다.
그것만도 반갑다.
손놀림이 저번 방문때보단 아주조금 자유스러워
보이는건 내 바램 때문인지도 몰랐다.
귀 가까이 대고 내가 왔다고 소리를 내보고
머리도 긁어주고 손을 잡고 주물러 주기도 해보는
그이는 잠만자는 친구앞에서 할말을 잊고 있다.
그토록 힘든 병수발을 하는 부인은 조금도 짜증없이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그 환경에 적응된 탓인지 밝은 아들의 미소가 너무 감사해서
가슴이 저리지만 포크에 찍힌 사과를 베어물며
웃음으로 바꿨다.
힘든 일에 부딪혔을때 그사람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었을까?
혹시나 못 견디고 탈출을 하진 않았을까?
작은 선물 하나 건네 놓고 오는 차안에서
내내 머리에 차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다시한번 나를 돌아 보게 한다.
이렇게 무탈한게 감사하기도 했다가
그이친구와 부인을 생각하면 한쪽구석으로
혼자 편안한게 죄스럽기도 했다가...
가슴으로 꽉 차오는 답답한 맘이
되돌아 오는 자동차 불빛마저
흐려 놓고 있었다.
언제쯤,
긴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으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