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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타래 (5) - 쥐구멍


BY oldhouse 2002-01-18



난 쥐구멍입니다.


한때 내가 처했던 토담집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내눈과 귀가 빤히 쳐다 볼 수 있는 곳은 감초댁 안방 입니다.
키 낮은 토담집 감초댁은 낡은 집으로 벽이라야 얽히고 ?鰕?대나무판에 볏짚을 섞어바른 황토가 전부 입니다.
어느날 조화롭던 초가지붕이 벗겨지고 넙죽이 새마을 기와가 얹혀졌습니다.
통행의 자유로움과 놀이터를 잃은 서생원들은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는지 아니면 만용을 부리는지 겁도 없이 안방 귀퉁이를 목표로 이를 갈기 시작했습니다.
뒤안에서 안방까지는 감초댁 손으로 한뼘이나 될까요.
순전히 쉽게 드나드는 통로용으로 제가 탄생하게 된거죠.
안방 주인 감초댁과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서생원들의 승리로
끝이 나고 그 여세를 몰아 반닫이며 이불장을 발판으로 방 천정 귀퉁이까지 나의 분신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감초댁 걱정은 끝이 없습니다.
없는 살림 도박에 빠진 감초양반이 이틀이고 사흘이고 돌아오지않는 날이 태반이고 목구멍 풀칠을 위해 대여섯 자식들이 대처로 떠나고도 어린 쌍둥이 딸들의 굶주림이 멍에 입니다.
이런 감초댁이고 보니 아마 천정에 뻥하니 뚫린 다른 하나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 입니다.
물론 제게로 쏟아지던 곱지않던 시선도 너댓번 양말짝이나 쑤셔박아 보다간 그것도 시들해졌는지 상관않게 되었습니다.
긴 한숨을 구들장이 꺼지게 내쉬고 달빛이라도 휘영한 밤이면 뿌연히 스며드는 달빛을 좇아 가만가만 내게로 와 눈을 대보기도 하였습니다.
아! 젖어버린 두눈으로 꽉차버린 그 속엔 더 이상 밝은 달빛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찔레꽃향기 코피라도 쏟을 듯 진하디 진한 밤이며 개구리 울음 가득 하던 여름밤, 할 일 다한 감잎이 툭툭지는 가을밤, 밤 새 내린 함박눈 이고 진 댓가지 휘청 눈 터는 소리로 동트는 겨울날 ,,,, ,
감초댁과 내가 온전히 하나 되던 사시사철.
그들막한 이야기가 왁자지껄한 여느집 마당도 아닌 그늘지고 초라한 뒤안으로 뚫린 내 몸으로, 내 구멍으로, 쥐구멍으로도 한 많은 감초댁과 내가 어우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대처의 자식들이 가락지 한쌍을 해 왔습니다.
난생 처음 가져보는 가락지같은 보물, 자식들이 마련해준 피같은 가락지 한쌍!
참으로 눈물겨운 가락지는 바라만봐도 닳아질까 무명천 질끈 감고 동여매길 대여섯번, 무엇보다도 겁이 나는것은 도박꾼 남편.
감초댁은 그동안 빼앗기고 속고속이는 머리싸움에 지친 나머지 이번만큼은 하고 가락지를 이불장 뒤로 훌쩍 던져두었습니다.
몇날며칠 문턱이 닳게 감초양반이 드나들었습니다.
가락지 냄새를 맡은 이상 그에게도 못 견딜 노릇이었습니다.
감초댁은 은근히 기뻤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지아비가 드나드는 집은 온기가 있었고 낌새로 가락지가 온전하다는 뜻이고 보면 그 어떤 협박이나 회유도 견딜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감초양반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날인가, 감초댁은 정신없이 반닫이며 이불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금세 방안은 난장판이 되고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다리를 뻗고 앉아 통곡을 해댔지만 그녀가 찾는 가락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나는 목이 메여 아무말도 못하고 꽉막힌 가슴앓이로 까무러칠것 같았습니다.

해거름녁 그녀는 피멍든 만신창이로 돌아왔습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감히 서방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는 네가 도둑이지"
듣지않아도 뻔한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몸 전체로 퍼져왔습니다.
죽기살기로 매달렸을 감초댁의 첨이자 마지막인 몸부림의 전율.
무명천으로 가락지를 질끈 감고 두르던 손길이 커다랗게 내안으로 가득 차 왔습니다.
희망을 잃은 그녀가 택할 지도 모를 끔찍한 상상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내 몸의 길이가 자라나 그녀의 목을 두르고 함께 대롱거리는 환상에 사로 잡히기까지 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감초댁이 아직도 난장판인 방바닥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빈 손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빙그레 웃어보이다가 울다가 제 정신이 아니 었습니다.
그녀는 미친듯 방안을 기어다니며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내게로 내게로 다가온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내안에 눈을 들이밀다 후벼파기 시작했습니다.
울컥! 무엇인가 토해졌습니다, 아니, 빨려나갔습니다,
그녀의 가락지쌈이 호도알만한 가락지쌈이 내안에서 톡 튀어 나왔습니다.

천정을 오르내리던 짓궂은 서생원이 물고가다 걸린 가락지가 어찌 다행 내 목에 걸려 그녀를 살릴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오래도록 나를 빤히 쳐다보다 아주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가시돋힌 밤송이 하나를 조심스럽게 찔러 넣어주었습니다.
나는 낮게낮게 엎드려 그녀의 희노애락을 걸러내야할 또 하나의 일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내가 쥐구멍일 수 있다는게 쥐구멍이 나 일수 있다는게 참으로 근사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