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야기를 읽고보니 나도 생각이 막 난다.
큰집과 우리집. 울 집은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그 앞에서 작은 점빵을
했다. 그리고 큰집은 버스에서 내려 100미터쯤 걸어가야 했다.
난 지금도 고모가 몇명이였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서운하게 생각되는건 무엇 때문일까.
큰집에 가면 나도 모르는 고모가 와 있곤했다.
볼??마다 고모라는데 매번 사람이 달랐다.
그도 그럴것이다. 고모들은 친정에 오면 정류장 앞에 바로있는
우리집은 들른적이 없다.
곧장 큰집으로 갔다.
이종사촌오빠라는데..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전에 작은 꼬마를
데리고온 오빠.그러고보니 큰고모의 손주였다.
난 지금도 친정아버지가 형제중 몇째인지 잘 모른다.
아니 솔직히 알려고도 하지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고모들이 싫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 있었다.
큰집에 나하고 동갑내기 영진이가 있다. 고모들은 영진이게
올때마다 용돈도 줬다. 그러나 난 고모가 불편했고 늘 낯선 사람
이였다. 난 지금도 사촌들이 몇명인지도 어디에사는지- 하여튼
고모들에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정말 웃기더라.
내가 중학교 다닐때였다.
아빤 무슨일인지 정장을 갖추고 새벽차를 타셨다.
그리곤 저녁에 들어오셔서 힘들어 하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빤 큰고모아들, 즉 큰조카가 사기죄로
전주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을?? 아버지는 참고인으로 몇일을
경찰서에서 시달리셔야 하셨다.
조카를 살려내기위해서 아버지는 사채로 넘어갈뻔한 주택을
사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사기가담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 매일 그렇게
시외버스를 타면서 조사를 받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 점빵을 운영하면서 모은 돈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그러셨다. 내기억은 어떻게 됐는지 줄곳 고모들이 아쉬울때만
아빠를 ?았다는 기억밖에 없다.
울 아빤 작은 아들이라는 것때문에 결혼할때 받은 재산은 한푼도
없었다는게 늘 힘들었다고 한다.
두분이서 열심히 일하고 여섯이라는 자식도 두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때였다.
울 집은 최악의 상황이 왔다.
2년터울이라 고3. 대학2.고1(나)
밑으로 중학생,초등학생. 난 진로를 바꿔야만 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다 대학을 보내긴 너무 힘들었다.
여상을 장학금으로 다니면서 나름대로 잘 나갔다.
내가 취직을 하고 큰언니도 오빠도 취업하고..
그뒤로 울 집은 잘풀렸다.
할머니도 손주라곤 큰집손주만 손주처럼 여기시더니 세상뜨실때
되니까 작은 아들집만 고집하셨다.
우리가 어리고 힘들때 큰집만 ?던 고모들이 어느날 부턴가 울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 돈때문이였다.
큰아버진 재산관리를 잘 못했던 것 같다.
하여튼 울 아빤 동네에서도 알부자라는 소릴 듣는다.
내가 둘?를 낳을때를 맞춰 집도 새로 지으셨다.
우리 자매들은 고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서 친구들과 모이면
별 할애기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울 자매들은 조카들에게 무지 잘 할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