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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탈출(겨울여행)


BY 산아 2001-12-05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커피한잔을 들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이탈을 꿈구곤 한다.
애들의 칭얼거리는 소리나 직장동료의 정신차리라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오곤 하지만........

졸업후 한번도 직장을 놓지 않고 첫애를 낳고 바쁘게 살다가
첫애 초등학교 들여보내고 둘째를 낳았다.
새로이 시작되는 육아일에 직장일에 정말 몸이 철인이어야
버텨내야 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자식은 내리 사랑이라 하여 남편이나 나는 정말 둘째가 이뻐
내몸 녹아나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산지도 모르게 살았는데...

문득 늦가을부터 여행가자는 남편말을 건성으로 들었는데
지난 토요일 1박2일로 부여로 가서 부소산성을 산책하고 군산의
선유도로 가서 바닷바람이나 쏘이며 회에다 소주도 먹고
바다나 실컷보고 오잔다. (어쩜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님께서 둘째를 주말에 돌보다고 하시기에
죄송함을 무릅쓰고 토요일 오후 자가용으로 짧은 가족여행을 갔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일정을 잡아 군산에서 1박을 하고 부여는
새벽에 출발하여 가기로 하였다.
도심의 탁한 공기와는 전혀 냄새가 다른 바다공기를 맘껏 마시면서
모처럼 아들과 셋이서 팔짱을 끼고 보는 갈매기는 우리를 서서히
흥분시키더니 팔팔하게 살게 만들었다.

모처럼의 여행이고 기분전환이라며 신랑왈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자기 돈쓰는 것에 상관말란다"
바닷가가 보이는 2층횟집에 앉아 신랑과 소주 한잔을 들이키니
괜히 눈물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1박을 하고 새벽 6시에 출발하여 백제의 유적지인
부여의 부소산성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산성주위는 낙엽들이 겨울비에 떨어져 아침산책길로는 그만이었다.
아들놈은 아빠와 모처럼 걷는 길이라 그런지 아빠손을 잡고
무엇이 즐거운지 정신없이 재잘거린다.
덕분에 난 퇴색되어버린 낙엽들을 보면서 생각에 하염없이
잠길수 있어 행복하고....
그렇게 아침일찍 산성을 돌며 낙화암에 들러 아들에게 잠시나마
야트막한 우리의 지식을 애기하고 고란사에 들러
커피한잔을 마시고 다시 내려오는 길에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으니
컵라면 밖에 없다. 하지만 산에서 먹는 컵라면 가히 환상적이다며 울 아들
우리가 먹다 남은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다.

시간이 촉박하여 부여군에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과 박물관을 들러
백제의 유적에 대해 수박겉?기식으로 대충보고
(박물관에 갈때마다 아들놈은 항상 재미없어 하더니 무선 헤드폰을 끼고 유물앞
에 서면 설명이 나오니 신기하다며 열심히 들어서 속으로는 흐뭇함)
다시 군산에 오니 12시다.

영양식을 해야 한다는 신랑의 주장에 전복죽 한그릇으로
배를 든든하니 채우고 선유도 가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모처럼 타보는 배에, 잔잔한 파도에, 물살을 일으키며
가는 배난간에서 신랑의 팔짱을 끼고 바다를 보니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괜히 집에 있는
어머님과 둘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약 2시간 동안 원없이 바다를 보며 캔맥주를 한캔씩 마시고
선유도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빌렸다.
중학교 이후 처음 타보는 자전거지만 옛날실력이 되살아난다.
남편과 아들이 한 대의 자전거를 타고 난 또 혼자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섬을 돌니 오랜만에 10대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약 40분간 섬을 구경하고 다시 군산항에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모처럼만의 외출에 바닷가에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 기저귀부터 빨아야 하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한 여행이 우리가족을
더욱 든든하게 묶어주었고 큰애는 보고서를 써야 되겠다고
유적지에 대해 아버지와 행복한 애기를 한다.

다람쥐 체바퀴돌 듯 날마다 변함없는 가정일이며
직장일이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의 모처럼의
이탈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