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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독무대


BY cosmos03 2001-12-05

아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고
난, 박경리님의 김약국의 딸들을 보고있었다.
느닷없이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잠시후~
" 아~아...마이크 시험중..."
그리고 들려오는 남편의 노래소리.
설운도의 " 여자 여자 여자 "
부터 한곡을 때리는거다.
" 아픔을 달래는 여자 세월속에 지친 그 여자... '
혼자서 신이 나있다.
그리고는 또 원점. 빈잔...
트로트로 막무가내로 나가는거다.
슬그머니 책장을 덮고, 남편의 리사이틀 무대를 관람하기로 했다.

하긴, 말이좋아 쇼~ 구경이지 시끄러워서 도데체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거다.
지그시 감은눈. 빼딱하니 옆으로 꼬인몸.
마이크줄은 자기가 무슨 프로 가수라고
한 옆으로 삐딱하게 올려 움켜쥐고 있다.
처음엔 얌전히 거실바닥에 앉아서는 양손에 마이크를 잡고 부르던것이.
남행열차가 나오고 아파트가 나오니 벌떡 일어서서는
의자위에 한발을 걸치다거 겅둥거리며 춤을 추다가...
도데체가 정신이 사나웁다.

남편이 좋아하는 나훈아의 영영이 나온다.
노래방에서는 꽤나 높은 점수가 나오며
그럭저럭 들어줄만도 했던것인데
아무리 영업용 노래방 기계라고는 하여도
주위의 분위기가 안 받쳐주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이다.
" 한 60 점은 나오겠지? "
혼자서 묻는다.
나중에 나온 점수는 72점.
자기가 말한것보다는 높은 점수인데도 남편은 궁시렁거린다.
" 야아~ 이거 기계 손좀 봐야겠다 어떻게 72점이냐? "
푸~후훗.
옆에서 지켜보던 난 그저 웃을수 밖에.
딸 아이는 이미 제 방문을 닫아걸은지 오래이다.
온갖 개폼을 다 잡고 부른 노래인데... 실망이 큰가보다.
목수가 제 실력탓은 안하고 연장탓을 한다하더니.
남편이 꼭 그짝이다.
제 노래실력은 탓 하지 않고 기계 탓만을 하고 있다.
그 점수에 못 마땅 했는지 요번엔 남진의 " 님과함께" 를 부른다.
" 저 푸른 초원위에 ( 으?X으?X ) 그림같은 집을짖고 ( 절씨구절씨구 ) "
게다리춤에 막춤에...마구마구 흔들어제낀다.
혼자보기 아까운데... 딸 아이라도 옆에서 보아주면 좋으련만..
음정무시~ 박자무시~ 관중까지 무시한다.

뻘뻘거리며 숨까지 턱에 닿았건만 남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연속 몇곡을 예약해 놓고는 열심히 부르더니.
날 보고는 한마디 한다.
" 야이~ 마누라야 어째 앵콜이 한곡도 없냐? "
( 우이쒸~ 앵콜이 어거지로 나오냐? 이젠 좀 고만해라 )
겉으로 뱉아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만 내 뱉는다.
한시간여를 혼자서 신이나있던 남편이 요번엔 마이크를 내손에 쥐어준다.
" 한곡 때려보시지? "
(흐~음 날보고 찬조출연을 하라고라?
당신혼자 독 무대 하셔 )
" 싫어. 내가 술 먹었어? "
난 별로 노래가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집에서는 도데체가 흥이 안나는거다.
그래도 꽝꽝 하며 울리는 맛이라도 있고.
악또한 쓸수 있는 공간이 되야하는데...
내 목청 그대로 불러놓았다가는 동네 사람들 떼로 몰려와서는
항의에 들어갈게 뻔 한데 내가 왜 하나?
" 난, 됐네요. 당신이나 배 터지게 많이 부르슈 "
마다 않고는 남편은 다시금 악을 쓴다.
글력도 좋으슈~

그렇게 혼자의 리사이틀 무대를 갖던 남편이 거실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하긴...지칠만도 하지.
도데체가 몇시간에 몇곡인감?
" 이야~ 나이가 안 따라주나보다 "
" 다 놀았수? "
" 에이~ 혼자 부르려니 재미없어. "
흐억~~~~~~~ 여태껏 혼자서도 잘해요를 해 놓고는... 에구구~ 속 보인다.
주섬주섬 마이크와 기계를 정리하고 나니 남편의 흥은 아직도 안 가셧나?
반주없는 노래들을 허밍으로 부르고 있다.
" 당신, 연습하지? "
" 무슨...이 사람이..."
멎 적어 웃는 남편의 심사를 내 꿰 뚫어본다 아이가.
연말쯤에 남매들의 모임이 있는데 미리 연습한다는걸...
시댁식구들은 모두가 한자락의 노래들을 하는데
유난히 우리 식구만 음치인거다.
아마도 그때에 대비해서는 지금부터 땀흘려 연습에 들어가나본데...
글쎄 결과가 어떻게 따라줄지는~
그러나 저러나 그날이 지나기까지는 난 남편의 이런 생쑈~를 몇번인가를
더 봐야할텐데..
그 동안의 내귀는 어찌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