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야, 네가 20년만에 너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면서 이렇게 지난 날을 회상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너와 내가 많은 시간을 같이 하기는 하였지만, 서로의 깊은 속내를 스스럼없이 털어낸 일이 그리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너는 대학으로 나는 직장으로 각기 다른 길로 서로의 인생의 궤적을 달리한 다음부터는 더더욱 서로의 사생활, 일상의 대소사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는 생각때문이야...
오늘 너의 메일을 받아 보고는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네가 나보다 1년 늦게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들을 하나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채 1년이 안되어 너는 미국으로 간다고 연락을 했었지. 남편도 두고 1살이 안된 아들은 친정엄마에게 맡겨놓은 채로 혼자서 먼저 미국병원에 일도 배울겸, 공부도 더 할겸 간다고 하였는데...
그 때 나는 생각했지... 역시 광자는 독한데가 있다고...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자 다른 사람보다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신체 장애자가 살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한국보다는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는 미국에서의 생활을 택한 것이라고... 집에서의 경제적 뒷받침도 되고 오빠도 미국에서 의사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좋게만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구나. 그토록 큰 아픔을 안고 도망치듯 자식도 떼어놓은 채로 미국행을 선택했을 줄이야... 결혼하고 바로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시어머님께서 아주 당연하시다는듯, 몸이 불편한 며느리를 본 시엄마로써 너무나 당연한 요구라는듯, 바로 이것을 기대하고 흔히 남들이 열쇠 3개를 싸들고 사위로 본다는 의사아들을 흔쾌히 다리가 불편한 자식을 둔 집에 사위로 보냈다는듯, 남편을 일찍 여윈 슬픔을 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소복을 입고 계신 너의 엄마에게 재산분할을 요구하였다는 것이었구나...
너는 물론 너의 엄마께서는 얼마나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을까? 원래 마음 여리고 착하기만 한 너의 남편의 충격 또한 컸겠지... 너에게 미안하였을 것이고 본인의 대쪽같은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그래서 너는 결국 너는 세상의 모두가 무섭고 약속하고,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그저 빨리 이 혼돈의 와중에서 벗어나고만 싶은 생각으로 미국으로 도망을 간 것이었구나...
그 이후 남편과 헤어져 결국은 이혼에 이르게 된, 그 뻔하고 지리하고 괴로운 이혼의 과정을 견뎌내야만 했겠구나...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 연락이 끊겨 버리고... 나는 그 이후 남편도 아들도 미국으로 가서 그 곳에서 남편과 함께 의사의 길을 걸으며 잘 살고 있겠거니만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미 20년이 다 된 빛 바랜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너의 메일에 묻어나는 당시의 너의 절망과 괴로움을 느끼면서 순간 가슴이 아득하여졌단다.
그래, 너의 말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예측 못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울고 웃으며 절망하고 기뻐하면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인생의 궤도를 달리할 때가 있지.... 누구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