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무렵부터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지금은 대설 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온 세상이 하얗다. 하얀 눈송이의 낭만에 젖어 정겨운 이웃을 찾아 따뜻한 커피 한잔의 낭만도 잠시, 집에 있는 아내들은 어느듯 남편의 퇴근길 안전을 염려해야 될 지경이다.
나도 그런 낭만에 겨워 아래층 여자를 찾아 가 커피 한 잔을 청한다. 창 넓은 베란다 너머에는 말없이 눈이 소복히 쌓여 금세 작은 꼬마아이의 발목을 거뜬히 차고 오를 정도이다.
아랫층 여자는 커피 잔을 내려 놓더니 전화 수화기를 든다.
"oo 아빠, 퇴근 할 때 천천히 조심해서 와요.
따뜻한 찌게 끓여 놓을께요.
나중에 봐요."
결혼 사오년차 아내의 남편에 대한 목소리가 저렇게 고울 수 가 하고 나는 마음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저 고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저 아내의 남편은 얼마나 마음이 따스해질까! 나 역시 사오년차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신혼 때 조차 그런 고운 목소리로 남편의 건강이나 출퇴근 안전을 걱정하며 다정하게 말을 건 넨 적이 없었던것 같다. 누가 옆에 있어 가식적인 목소리라도 그렇게 다정한 적이 없다.
그런 상냥한 아내의 모습이 내게는 왜 그렇게 쑥스럽고 어색하기만 한 걸까. 사투리를 쓰는 아내라 그런걸까? 그렇다면, '아! 나도 저런 서울말 좀 썼으면 좋겠다.' 그러나 같은 고향 출신의 친구는 또 나같지 않고 여우같은 걸 보면 어디까지나 성격 탓인 것 같았다. 오늘은 나도 좀 그렇게 해 봐야지.......
커피 한 잔 하고 집에 올라오니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남편이었다.
"여보세요?
응.
와?
그도 눈 만이 오제?
그래. 나중에 보자.
끈짜~"
전화를 끊고 나서야 어이구 이게 아닌데하고 가슴을 통통!!!
그러나 나의 낭군님, 낭군님만은 내 마음 잘 알거라 생각해.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렇게 눈 오는 날은 님이 오기 까지 몇번씩 창문을 열어 보는 마음이 따뜻한 아내라는걸. 그러니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귀고 그것으로도 아쉬워 이렇게 결혼까지 해서 데리고 사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