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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의 사계를 보고서...


BY 들꽃편지 2001-01-29

네 가족의 노루가 살고 있는 한라산 백록담.
취재팀들이 촬영을 하기 위해 텐트를 쳤더니 용감한 노루 한 마리가
"카욱 카욱"하며 위협을 했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은지 죽은 나무 토막에 머리통을 박으며
화풀이를 했다.
백록담은 인간의 땅이 아니라는 일종의 경고 인듯이...
누루도 산양.염소처럼 알알이 흩트러지는 똥을 누었다.
검정콩이 차르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노루 식구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는데 건방진 까마귀 한마리가 같이
놀자고 끼어 들었다. ?아내면 다시 날아 오고....무지 웃겼다.
까마귀와 살랑이속에 봄기운이 날아왔다.

4월말인데도 눈이 내리는 백록담.
때 아닌 눈보라였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순 없었다.
꽃들이 한가지씩 피기 시작하고,
백록담가에 알을 낳는 도룡용. 도룡용알을 먹는 올챙이.
먹이사슬이 뒤를 잇고 또 이었다.
5월말이면 곳곳이 털진달래로 불타기 시작했다.
풀잎만 먹던 노루들이 진달래꽃잎은 톡톡 따 먹었다.
임신 때문에 암컷이 식욕이 강해지는 때이기도 했다.
봄비 흥건히 젖은 뻐꾹이가 울었다.그러면 백록담은 푸르름이
더 해갔다.
종 모양의 꽃을 피우는 분홍 둘죽나무.흰꽃이 피는 산개버찌나무.
노란꽃 섬매발톱나무.
진박새의 집은 비좁고 답답한 암벽틈이였고,
지구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삼광조는 어찔어찔한 나무꼭대기에
집을 지었다.
붉은 저녁노을빛이 음악이 흐르듯 애잔하게 흘러갔다.

오름으로 이어진 한라산 자락들...
오름엔 질좋은 초지가 발달해 옛날부터 동물를 놓아 길렀다.
그리고 이곳에 멸종위기의 식물과 곤충이 잡초가 엉키듯 얼기설기
살고 있다. 제주 사람의 생활터전 오름.
생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쉬는 곳도 오름. 바로 이 곳이였다.
네모다랗게 현무암으로 쌓아 만든 묘지가 특이하고 독특했다.
꽃대를 흔들어 꽃가루를 바람결에 날리며 여름은 깊어만 갔다.
그때쯤 노루 새끼가 태어 났다.
새끼들은 어느거든 앙증맞다. 뱀새끼만 빼고...
산들산들한 풀숲에서 먹고 자고 커가는 노루새끼.
자기 엄마를 연실 불렀다."찌익 찌익"
그러면 엄마도 "까욱 까욱" 대답을 했다. 어떤 새 목소리와 비슷?
장마철이 오면 백록담밑 영실계곡엔 물이 넘쳐나 폭포가 생겼다.
그 밑 진달래소엔 무섭게 물이 불어났다.
한라산은 늘 안개에 싸여 있다. 한 달 동한 일주일만 빼고....
고산지대에 사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지리산,덕유산에서만
볼 수 있다.
여름야생화꽃도 한창이였다.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고산식물들...
솜다리.섬잔대...바위틈새에서 피는 한라구절초는 아름다움의
결정체였다.

맑은 가을이 왔다.
노루새끼가 젖을 뗄 시기도 왔다.
숫노루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뿔을 맞대고 싸움을 하고,
암노루는 그림같은 바위 언덕 나무 그늘에 앉아 되새김질을 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가을이였다.
노루들이 구애열기로 백록담의 푸른초지도 갈잎으로 변색하고...

2001년 1월. 한 달 늦게 눈이 내렸다.
백록담 식구들의 시련의 시기인 겨울이 온 것이다.
한라산의 정상은 꽁꽁 얼어 붙었다.
지난 일년 동안 말없이 생명체를 길러냈던 백록담도 얼었다.
또 새로운 한 해가 열리고 있었다.
인간의 세상처럼...
우리 여정의 일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