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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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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에서


BY minsoo 2001-01-26

눈 쌓인 8차선 고속도로를 달려간 그 곳. 영종도에 그가 있었다. 아니 그를 찾았다. 아니야. 나를 찾은거야. 일산으로 향하던 내 눈에 들어온 인천공항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핸들을 돌렸다. 아직 공항이 개통되지않아서 길은 한산했다. 눈이 녹지않아서 왕복 8차선 도로중 4개 차선만이 사용되고있었지만 뻥 뚫린 길을 달리다보니 얼마나 달려온지도 모를 정도였다. 한참을 달린듯도하고 지나온 시간은 없었던 듯도하고. 그렇게 가다보니 영종대교라는 날렵하면서도 웅장한 다리가 눈 앞에 보인다. 오는길에 보니 이층으로 만들어진 다리였다. 영종대교는 바다위에 있었다. 겨울바다위에... 영종도 라면 섬일텐데 바다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니. 영종도에 들어서서 가다보니 공항청사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직 들어가볼수는 없단다. 근처에 전망대가 있다고해서 가봤지만 눈이 녹지않아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차에 기름도 떨어져가고.. 커피생각만 아니었으면 서울까지 그냥 왔겠지만.. 주유소를 찾았다. 아직 완성되지않은 도시의 황량한 도로변에 불 밝히고 서있는 주유소. 네모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의 초입에 그 주유소가 서있었다. 새로 지은 냄새가 아직까지 풍겨나오는 그 곳에.... 그가 있었다. 카드를 찾느라 가방을 모두 뒤집을 듯한 내게...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그가 말했다. ..따뜻한 커피는 없나요? ..아직.. 없네요. .. .. 카드를 내밀고 그가 받고 잠시후 싸인을 한후 출발하려는데 그가 다시 나온다. 손에 캔커피를 들고 ..따뜻할거예요. ..어머, 고맙습니다. ..안녕히가세요. ..네에, 안녕히계세요. 그것뿐이었다. 몇분이나 되었을까. 오분? 삼분?..... 그런데 나는 그 순간 다시 돌아가고싶었다. 가방을 뒤지는 내 옆에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기다리며 했던 ...천천히 하세요... 카드를 내밀며 언뜻 본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담겨있던... 명치 끝이 아려왔다. 가슴이 뻥 뚫린듯했다. 돌아오는 내내 그의 느린 말투와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돌아갈수가없었다. 운전석 뒤에는 사랑스런 아들 둘이 타고있었다. 이게 무엇일까. 처음 만남 사람이었다. 그냥 스쳐지나갔다고 말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틀이 지난 오늘은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아니, 얼굴은 그날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않았었다. 물론 남편을 첫사랑이라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후 단한번도 다른 이성에게 호감을 느낀적이 없었다. TV에 나오는 멋진 연예인을 보면서도 설레여 본적이 없던 나였다. 결혼생활 십년이 지난 곧 마흔의 나이에 들어설 여자에게 이런 감정이 가능한 것이었던가. 그날 내가 찾은 것은 그 남자분이 아니었다. 잊혀졌던 내 감정의 하나였다. 슬픔, 미움, 기쁨, 사랑...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 가끔 꺼내보곤했었는데 그날은 설레임, 아련한 그리움.. 이런 예전의 감정이 고개를 들었던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거기에 섞이지못하고 자꾸 겉돌다가 언젠가는 튕겨져 나올 내가 그날 처음본 사람에게서 배려라는 낱말을 떠올릴수있었던것 같다. 울고싶은데 울 기회를 찾지못하다가 누군가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어린아이처럼. 위로 받고싶고 따뜻한 마음을 받고싶었던 추위에 떨던 내게 건넨 한 마디가 ..... 아, 모르겠다. 앞으로 한동안 영종도를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아파오겠지. 한참 지난후에는 영종도라는 지명을 보면 미소짓겠지. ... 그러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후에는 이러한 감정을 또 잃고 살겠지. 어느곳 어느땐가 우연히 다시 찾는 날이 올때까지... 영종도에서 내가 받은 것은... 배려..였다. 영종도에서 내가 찾은 것은... 그리움이었다. 잊고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