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물들이며
비단모래
설을 지내러온 세손녀의 손톱에
수퍼에서 파는 봉숭아 가루를 사다가
물에 개어 올려놓았다
지금쯤 여름봉숭아는 땅아래서 꽃잎을 만들고 있을것이다
바람에 터진 봉숭아 씨앗이 눈속에 녹아
땅속에 뿌리내리고 싹 틔울 봄을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무명실로 꼭꼭 묶어 화끈거리는 그밤을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어머니 한숨 쉬던 그 여름밤을 붉게 물들이던 고단함도
주먹봉숭아 피던 우물가에서 웃었을 것이다
성급하게
성급하게 몸을 포개면
삼년마다 아기는 나와
이십사년간 보름달이 되었다 초승달이 되면서
팔남매를 낳은 어머니 손톱은
봉숭아꽃물도 들이지 못하게 일그러지고
돌아가신 다음에야 닳아빠진 금반지 하나를
애써 빼놓아야했다
땅속에서 어머니는
봉숭아 꽃을 피우고 계실것이다
손녀들은 손가락에 물든 봉숭아 꽃물을 펴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할머니의 할머니를 기억하며
꽃처럼 예쁘게 물들어 갈것이다
사랑은 유유히 강처럼 흘러
결국 사랑에 닿을 것이다.